국민의 추앙을 받던 비렌드라 네팔 국왕이 총격으로 숨진 뒤 네팔 국민은 충격, 애도, 두려움 그리고 의혹에 휩싸여있다. 네팔 전역에 4일부터 5일동안 공식 애도기간이 선포된 가운데 관공서, 학교, 기업체들은 일제히 문을 닫았으며 고위공무원들이나 희생자 유족들은 힌두교 전통에따라 애도의 표시로 머리를 깎았다. 수도 카트만두 중심가에서는 지난 1일 총격사건이 발생했던 나라얀히티 왕궁 앞에 꽃다발을 든 추모행렬 모여들어 장사진을 이뤘다. 한편 도심의 혼잡한 교차로에는 작고한 비렌드라 국왕 내외의 대형 초상화가 설치돼 지나가는 사람들이 애도의 뜻을 표했으며 일부 젊은이들은 국왕 내외를 추앙하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기도 했다. 이밖에 머리를 깎은 400여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비렌드라 국왕의 사진을 들고 왕궁 주변도로를 돌았으며 주변 군중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수도 카트만두에서 네팔 경찰이 국왕 일가의 참사를 애도하는 시위대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발포해 시위대 한 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시위대들은 '갸넨드라에게 죽음을 달라'고 외치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 날짜 현지 신문들은 일제히 국왕의 부고를 머리기사로 다루면서 애도했다. 영자지 카트만두 포스트도 1면 사설에서 국왕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이번 총격 사건에 디펜드라 국왕이 연루돼있다는 보도를 언급했으나 아직 공식적인 확인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많은 현지 언론인들은 이같은 보고는 믿을만하다는 입장을 보이고있다. 네팔 왕궁은 공식성명에서 비렌드라 국왕 내외와 다른 왕족들이 자동소총 난사에 의해 사망했다고만 밝히고 무슨 이유로 죽었으며 당시 총을 쏜 사람이 누군인지 밝히지 않아 이번 사고에 대한 의혹만 증폭되고 있다. 만일 현지 소식통들의 보도대로 디펜드라 국왕이 왕위를 찬탈하기위해 이번 사건을 획책했다면 네팔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될 전망이다. 네팔뉴스닷컴은 디펜드라 국왕이 지난 1일 만찬 석상에서 자동소총으로 왕족 12명에서 총기를 난사한 후 방에 돌아가 군복으로 갈아입은 뒤 총으로 자결을 시도했다고 전했다. 군부 대변인의 말을 인용한 또다른 보도는 디펜드라 국왕이 만찬 석상에서 모친인 아이스와랴 왕비가 자신의 결혼을 반대하는데 격분해 자동소총을 난사, 부왕 등 8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나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국신문들은 디펜드라 결혼문제를 상의하기 위한 만찬에서 유독 갸넨드라가 불참한 사실을 주목하면서 일부에서 그가 이번 총격사고와 연관이 있다고 의혹을 품고 있다고 보도했다. 네팔 타임스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왕실 내분은 널리 알려진 일이며 디펜드라국왕이 비록 총기 애호가이며 사냥을 좋아했다고 하지만 그는 매우 예의바른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네팔 타임스는 이밖에 점성술사가 디펜드라 국왕은 35세 전에 결혼하거나 아이를 가져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면서 만일 이같은 충고를 무시할 경우 부왕인 비렌드라 국왕이 사망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는데 결국 맞아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런던=연합뉴스) 김창회 특파원 chkim@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