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중 하나는 기업인들이 사업하고 싶은 의욕이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완화 정도에 그칠 일이 아니라 규제는 아예 뜯어 없애야 합니다"

한국 경제의 위기 극복과 구조 개혁의 방향이 잘못됐다며 호된 비판을 서슴지 않아 2년 전 여름 한국 매스컴으로부터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됐던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58)씨.

그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한국 정부의 각오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사업환경은 최근까지도 나아진 것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일본 기업들의 절대 다수는 노사문제 등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에 투자하느니 중국에다 공장 몇 개를 더 짓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한 그는 "한국 기업인들부터 한국을 떠나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고 비판을 늦추지 않았다.

연 이틀째 비가 뿌려댄 23일 아침 양승득 도쿄 특파원이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한국 정부의 구조 개혁 방향이 잘못됐다고 강력히 비판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그렇다.

당시의 생각이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이 옳지 않다는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

한국 정부가 경제적 성과를 내세우고 있지만 나하고는 관점과 생각이 다른 것 같다.

남북관계 개선 등 거액의 자금이 소요될 여러 가지 과제로 미루어 볼 때 한국 경제의 현재 상황은 좋지 않다"

-말 머리를 돌려 보자.

한국 정부는 한국을 외국 자본이 들어와 사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누차 강조해 왔다.

"구호에만 그쳐서는 소용없다.

한국에 들어가 성공한 경우가 실제로 나오지 않는다면 투자가들에 신뢰를 줄 수 없다"

-한국 정부의 다짐을 부정하는 인상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

"나는 제조업을 하지는 않지만 친분 관계가 있는 일본 기업인들의 속내가 다 그렇다.

그들은 인건비도 훨씬 싸고 규제도 덜한 중국을 전적으로 선호한다.

중국의 어느 곳에 투자하느냐를 놓고 주판알을 튕길뿐 한국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내가 알기로는 일본의 일류 기업들 중 한국에 들어가 크게 성공한 기업은 없다.

정부간섭 허가 노사문제 등 족쇄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사업하기 가장 힘든 나라다.

기업 자체로 시각을 좁혀 놓고 봐도 그렇다.

외환 위기 후 상당수 한국기업들이 외국 자본에 매각됐지만 알짜 회사들이 다 팔렸고 미국과 유럽 은행 등이 실속을 챙겨버린 상태라 외국 자본들이 더 이상 사고 싶은 한국 기업은 많지 않다.

한국이 사업하기 좋은 나라로 바뀌려면 한국 기업인들부터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돌려 놓아야 한다"

-어떤 근거로 한국 기업인들도 한국에서 사업하고 싶지 않다고 판단하는가.

"기업인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노사문제,임금 등 제반 여건을 감안할 때 중국 등 다른 나라로 가고 싶어하지 않을 수 없다.

1997년의 외환 위기는 본질을 파고들어가면 한국이 자초한 부분도 많다.

사업하기가 어려워지자 기업들은 미얀마로,남미로,동유럽으로 줄줄이 나갔다"

-대그룹들을 해체해서는 한국 경제가 일어설 수 없다고 2년전 주장했지만 한국에서는 대그룹들의 과오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많다.

"그렇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초래한데 대그룹들이 책임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 은행들로부터 외화를 대규모로 빌린 후 이 돈을 대부분 해외투자에 사용했다.

이렇게 해서 나간 자금만도 적지 않다.

그 돈들이 한국내의 시설투자와 설비확장에만 들어갔거나 남아 있었으면 그렇게까지 심각한 위기에 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한국 정부와 재계가 규제완화 등 개혁의 속도와 방향을 놓고 대립 양상을 빚고 있다.

"인·허가 등 정부의 규제는 완화할 것이 아니라 아예 철폐해야 한다.

규제의 그물이 빚어낸 병폐는 한국 기업이 잘 알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외국기업과의 싸움에 앞서 국내에서 동종 업체들끼리 정부를 상대로 인·허가를 따내는 경쟁에 먼저 힘을 쏟은 게 일반적이었다.

인·허가만 받으면 그 다음은 탄탄대로다.

정부의 보호도 따른다.

하지만 결과는 뻔하다.

한국 기업 치고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업체가 몇 개나 있는가.

오토바이는 한때 일본 국내에서도 메이커가 2백70여개사에 달했지만 일본 정부는 간섭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뒀다.

싸워서 이긴 업체만 살아남도록 했다.

지금은 혼다 야마하 등 4개사로 압축됐어도 품질 제조기술 등 경쟁력은 세계 최고가 아닌가"

-일본 자동차가 한국시장에 자유롭게 들어가기만 하면 한국자동차는 국내 시장에서도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국경이 없어진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은 베스트&치피스트(가장 좋고 값싼)경쟁을 이겨내기 어렵다고 말했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역시 그렇다.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3국간 관계를 고려해 보더라도 한국 상품은 중국의 가격경쟁력에 밀리고 일본의 첨단기술을 당해 내지 못한다"

-하지만 자동차 가전제품 등 한국산 공산품들도 일본 시장에서 일본 제품과 경쟁하고 있지 않은가.

"직접 브랜드 싸움을 해서는 승산이 없다.

한국 제품들은 다른 판로를 찾아야 된다.

그렇다고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에만 안주하라는 것은 아니다.

통신판매 전자상거래 등 일본 업체들과 경합이 덜한 틈새를 찾아 기반을 굳히고 영역을 넓혀 가라는 것이다.

브랜드 파워는 달려도 한국 제품들 중에는 틈새만 공략하면 일본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일본 한국 기업들은 해외 시장에서도 언제나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지 않은가.

"한국과 일본은 수출시장에서 늘 경합관계였다.

한국의 산업구조가 일본과 흡사하기 때문에 환율 움직임에 따라 두 나라 기업들의 명암이 엇갈렸다.

엔화 가치가 오르면 한국 기업들이 웃고 떨어지면 반대로 일본 기업들의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볼 것이 있다.

엔화와 원화의 움직임이다.

최근 1년 정도를 놓고 보면 같은 변화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한국과 일본이 적어도 수출 시장에서 운명 공동체가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느 한쪽이 잘되고,못될 가능성이 좁아졌다는 뜻이다.

두 나라가 머리를 맞대고 제품 개발,경쟁력 강화 등에서 보조를 맞춰야 할 시점을 맞고 있는 것이다.

진짜 두 나라의 무서운 적은 중국이다.

중국의 위안화 움직임에 한·일 양국 경제가 큰 영향을 받고 있지 않은가.

한국과 일본이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한국측이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고이즈미 내각이 일본 국민들로부터 80%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고이즈미 내각의 경제 개혁 성과를 어떻게 전망하나.

"(손을 내저으며) 단적으로 말해 기대할 것이 없다.

구호와 의지뿐이다.

알맹이는 달라진 것이 없다.

경제 현안의 내용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한국 경제가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보나.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한국의 독자적 산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컨대 한국의 인터넷 산업이 높은 수준에 올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하나를 보더라도 놀랄 정도다.

그러나 알맹이가 문제다.

PC방이 엄청나게 많다고 듣고 있지만 인터넷으로 채팅이나 게임 같은 것만을 하게 한다면 더 이상의 부가가치 창출은 기대하기 어렵다.

인터넷 벤처산업을 육성하고 적극 장려한 것이 한국 정부의 큰 성과인 점은 분명하지만 어떻게 이를 21세기형 첨단산업으로 육성시킬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국가 전체로 볼 때도 3~5년 정도 앞을 내다 보고 미래 전략을 세워야 한다.

한국 기업과 정부가 미국을 많이 벤치마킹하고 있지만 미국과 한국은 분명 다르다.

미국은 서비스 산업 비중이 70%를 넘고 있지만 한국의 산업 중심은 제조업이다.

미국을 따라가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개혁을 했다고 하지만 과거 70년대에 영국의 대처 총리가 단행했던 것과 같은 빅뱅이 필요하다.

IMF식 처방이나 규제완화,금융완화 정도로는 되지 않는다.

결국 한국인들이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건전한 위기감 속에서 세계와 겨룰 수 있는 기업,산업,경제 구조를 만들어 내는 길밖에 없다"

[ 만난사람 = 양승득 도쿄특파원 yangsd@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