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을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과 개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충돌하는 듯하다.

일견 이상주의자와 현실론자 간에 통상적 논쟁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개혁에 대한 청사진이 제시되지 못했기에,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이 진정한 문제인가에 대한 공감대조차 형성되지 않은데 연유한다.

무엇이든지 바꾸는 것이 개혁이라는 가설은 성립되지 않는다.

기존의 질서를 정의하고 새롭게 추구하는 질서를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개혁작업이 시작됐어야 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개혁의 핵심개념은 ''개방''과 ''국제규범''이어야 한다.

국수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들겠지만 이 두 개념을 피하면서 국가를 영위하는 전략을 수립하겠다고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일본 교과서 왜곡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일본문화개방을 연기하겠다는 발상이 제기되는 현실이다.

마치 일본 국익을 위해 우리가 손해를 보면서 일본문화를 개방하겠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의미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이 개방에 대한 우리 인식의 솔직한 표현이라면 지나칠까.

환란극복을 위한 초기의 기업·금융개혁 프로그램은 개방과 국제규범이라는 두 개념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기에 두 개혁 프로그램 간에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무엇을 추구하는지가 명백했다.

그러나 실패한 개혁이라고 분류되는 노동·교육·의료개혁 프로그램은 근본적으로 위의 두 개념을 바탕으로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무엇을 위한 개혁인지가 불분명했으며,정치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이익집단의 반발만 초래하게 됐으며,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됐다.

최근 이러한 개혁실패에 대한 비판과정에서 좌·우익 이념논쟁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패한 개혁 프로그램이 시장경제의 논리에 배치됐고,평등만을 추구하는 좌익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주도한 게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가 제기됐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불행한 상황이다.

실제로는 좌익적 사고가 문제가 아니라 낡은 사고와 무지가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시대의 변화와 조화를 이루는 사고와 지식을 갖지 못한채 신념만 갖고 문제를 풀고자 할 경우,합리성보다는 믿음에 따라 행동하게 되고,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남북문제를 다루는 것도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있을는지 이제라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 글로벌이라는 개념이 중심이 돼야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는데,내부지향적 사고에 편향된 ''한국식''으로 글로벌 개혁을 추구하고자 한데 근본적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한국식과 글로벌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실리콘밸리를 본 뜬다고 각종 정부지원으로 벤처산업을 일으키겠다는 것이 한국식 발상이다.

교육연구기관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은 제쳐 놓고 빨리 손쉽게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재벌문제에 대한 조치를 보더라도 시장경제원칙과 일관성을 갖지 못한 잣대로, 즉 한국식으로 규제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이 문제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단지 경제활동의 결과가 아닌 경제활동의 행태에 초점을 맞춰야 규제가 실효를 나타낸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벌에 대한 규제는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하게 하고,상호지급보증을 못하게 하고,그리고 인수합병(M&A)시장을 활성화해 기업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에는 경영권을 잃게 하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한마디로 기업활동의 비용을 포함하는 내생변수를 통제해서는 안되며,투명성을 제고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경제환경을 마련해야 시장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국내기업을 규제하는 것보다는 외국기업이 국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함으로써 우리 경제환경을 더욱 경쟁적으로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 국내시장을 국제화하려는 넓은 안목을 가져야 제대로 된 대안을 마련할수 있다.

내부지향적 사고로 일생을 살아온 우리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방향으로의 개혁을 추진하기를 기대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chskim@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