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환란을 계기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다음 모처럼 집권 경험있는 야당과,야당 경험있는 집권당이 생겨나 무언가 종전과 다른 국정의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가 간절했다.

이같은 여망은 보기 좋게 무산됐고,유권자가 분개했음이 4·26 선거결과로 나타났다.

며칠 전 정책연합 3당 수뇌부의 호화골프 소동을 보면,긴급한 민생문제는 안중에 없어 보인다.

농담이었다고 어물쩍 넘어가지만 입에 쓴 맛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튿날 열린 최고위원 워크숍에서 ''국정 시스템과 스타일에 문제있다''''개혁 피로증''''개혁보다 마무리에 힘쓰자''는 등 새로운 바람이 이는 듯 했지만 곧 윗선의 질타가 있자 움츠러들었다.

야당의 모습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환란 전 부실기업처리,노동법 개정 등 주요정책 길목마다 야당의 공세에 밀려 개혁다운 개혁을 이룩하지 못했던 아쉬움의 기억상실증이 드러나고 있다.

밉던 야당의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법과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중시하는 세력이 야당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경찰과 대우자동차 노조의 충돌 이후 야당의 이미지가 혼미해졌다.

데모대를 무력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몇조원의 공적자금을 축내고도 나날이 손실을 내고 있는 부실기업의 노조가 육탄으로 구조조정을 저지할 때 공권력은 잠자고 있어야 하는가.

이는 과거 한보ㆍ기아의 경우보다 더욱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충돌사태를 거의 일방적으로 경찰의 과잉진압 탓으로 몰고가는 야당과 일부 언론의 비판을 경계한다.

언제 어디서나 법과 질서가 지켜져야 국민경제, 따라서 민생이 살아난다는 것은 여야를 떠나 모든 정당,그리고 모든 경제주체들이 명심할 사실이다.

개혁은 낡고 그릇된 제도와 관행을 새롭고 바르게 바꾼다는 명분으로 추진된다.

그러나 명분 못지 않게 실효성 또는 실리가 있어야 결실을 거둔다.

이른바 문민정부도 개혁추진에 힘썼고,그에 앞선 권위주의 정부들도 그러했다.

그 수많은 개혁 가운데 명분이 비대하게 부각됐던 것은 좌절되고,명분과 실리가 조화된 것은 아직도 지속성을 지니고 있다.

현정부도 개혁 또는 구조조정에 과거 어느 정부 못지않게 적극적이었다.

문제는 개혁명분이 때때로 이념지향성(시장경제 여부)에 의문시되는 대목이 있다는 점과,명분의 강렬한 빛에 가려 실효성에 그늘을 지우는 경우가 있었다.

예컨대 의료개혁 건강보험개혁 교육개혁 등이 성공하고 있는가.

작은 개혁문제로 사채시장 문제를 살펴보자.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소외된 영세서민,자기 신용관리에 실패한 사람들이 급전을 빌리는 곳이 바로 사채시장이다.

일본의 경우 1954년 출자법이 제정된 이래 대금업이 기업금융 위주의 제도금융기관에서 밀려난 봉급자들을 상대로 번창했다.

위협적인 추심과 고금리에 신음했다.

가정파탄 자살 등 피폐가 속출했다.

이래서 빚어진 사회적 물의 때문에 의원입법 형태로 1983년 대금업법이 제정됐다.

금리도 점차 낮아지고 추심과정에 야쿠자 행패도 사라졌다.

요즘 정부와 여당에서 사채시장을 겨냥한 ''금융이용자 보호법''을 성안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다.

어떻게 해야 금융이용자에 혜택이 돌아가나.

첫째로 얻어 쓸 수 있는 자금량이 넉넉하고,둘째로 금리가 낮고,셋째로 추심과정에 정신적ㆍ신체적 위해행위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자금공급자들이 등록하고 영업할 수 있도록 유인을 주어야 자금공급이 넉넉해지고,이들간의 경쟁으로 금리가 낮아진다.

그런데 개혁명분에 치우치면 시장금리인하,자금출처규명에만 주력하게 되고,그 경우 사채시장은 법 밖에 그대로 남는다.

반면 기존법으로 단속해도 된다는 주장은 영세민의 금융실태를 모르는 안일한 입장이다.

신문 등 언론매체들도 카드깡 등 사금융업체들의 과장광고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음에 자제가 있어야 한다.

본격적 정치계절에 앞서 개혁을 위해 남은 시간은 짧다.

크든 작든 모든 개혁에 명분과 실리가 균형을 이뤄야한다.

명분이 아쉬운 개혁은 없다.

반면 거창한 명분의 무게에 압살된 개혁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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