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북동쪽으로 이스트 강을 건너면 곧바로 뉴욕의 자랑거리중 하나인 프로야구 뉴욕 양키즈 홈구장이 나온다.

이 야구장을 끼고 발전한 시장이 뉴욕에서 손꼽히는 식품 도매시장 브롱스 터미널마켓이다.

우리식으로 따지면 가락동 농수산물시장같은 곳이다.

차이가 있다면 여기에 있는 상품은 세계 각국에서 들어온다는 점이다.

터미널마켓의 대표주자는 "C 케네스".식품업계의 "대부"격인 정강채(59) 회장이 26년간 일궈온 수입 판매업체이다.

통상 식품업체의 창고면적이 1천평 정도면 "대형"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C 케네스는 3천평이 넘는다.

화물트럭 17대가 동시에 물건을 실어내릴 수 있는 규모로 터미널마켓에서 가장 크다.

2천7백만달러(우리돈 약 3백50억원)에 달하는 연매출은 동종 업체들로선 넘보기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C 케네스가 주로 공략하는 시장은 카리브해 연안의 "서인도제도"출신 이민자들.뉴욕지역에만 1백20만-1백30만명을 포함,미국과 캐나다등 북미지역에서 4백만-5백만명에 이르는 거대시장이다.

C 케네스는 이 시장에서 가장 잘 알려진 브랜드다.

이 회사가 식품을 공급하지 않으면 이들 대부분 고향음식을 먹지 못할 것이라는 농담까지 나온다.

정회장이 미국땅을 밟은 것은 28세때인 70년 5월.무역회사직원으로 왔다가 아예 터전을 잡았다.

맨해탄 20번가에 조그만 사무실을 빌려 가발 인조보석등을 수입해 팔았다.

하루에 17-18시간을 일에 매달렸지만 이런 품목으로는 성장에 한계를 느꼈다.

그때 발견한 것이 "서인도 식품시장". 사무실 주변 한 식품가게에 늘 흑인들이 줄을 서 있는데 가만히 보니 이들은 아프리카출신 흑인들과 모양새가 달랐다.

바로 서인도출신들.이들에게 고유 식품을 공급하는 업체가 많지 않은 탓에 이 식품점이 유독 붐빈 것이었다.

"틈새시장"을 확인한 정사장은 76년 기존 사업을 정리하고 1백평 남짓한 창고를 빌려 새출발했다.

사업은 간단치 않았다.

처음엔 공급업체들이 기존 거래선들의 눈치를 보느라 물건을 주지 않았다.

서인도 국가들을 내집 드나들듯 돌아다니며 거래선을 하나둘씩 직접 확보해 나갔다.

사업이 조금씩 안정을 찾자 곧바로 브랜드화에 나섰다.

식품은 브랜드가 많이 좌우하는 품목.브랜드만 한번 "뜨면" 사업에 본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해도 될 정도다.

식품브랜드를 만들려면 상당량의 재고를 확보해야 하는등 많은 투자와 위험이 따른다.

때문에 왠만한 자신없인 뛰어들기 어렵다.

그저 적은 이익을 겨냥한 단순 수입판매업체로 만족해야 한다.

정회장은 과감하게 도전했다.

한번 시작한 이상 최고가 되고 싶었다.

구매계층에 맞게 클로버 아일랜드프라이드 CKI등 다양한 브랜드를 만들어 승부했다.

경쟁상대들인 서인도상인들 눈에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들의 입에서 "정말 지독한 사람"이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 노력끝에 브랜드는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코코넛밀크와 재스민라이스 등은 브랜드화로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이미 다양한 브랜드들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시장의 성장성을 보고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재스민라이스는 코끼리가 그려져 있는 CKI브랜드로 선보였는데 이젠 코끼리쌀로 더 알려져 있을 정도다.

서인도시장뿐 아니라 백인시장까지 휩쓸은 이 품목들은 아직도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브라질에서 수입해오는 고구마와 생강도 미국에서 많이 팔리는 제품.지칠줄 모르고 추진한 브랜드화의 결과다.

정회장은 몇차례 사선을 넘나들었다.

식품사업은 성격상 현금거래비중이 높은 업종.81년엔 회사에서 트럭운전을 했던 전직직원이 현금을 노리고 정회장이 타고 있던 차에 총기를 난사하기도 했다.

그 뒤에도 자신을 향한 총구를 목격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공식 집주소 없이 우편물배달을 위한 사서함 번호만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할 정도였다.

86년에는 소장암 수술을 받기도 했다.

총기위협과 암수술을 받을 때는 사업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그때까지 주먹구구식으로 경영하던 회사를 "주인이 없어도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회사"로 시스템화 시켰다.

회사의 모든 업무를 전산화하고 현금은 곧바로 은행으로 입금하는 체제를 도입했다.

유명회계법인인 KPMG에 회계감사를 맡기는등 투명경영체제를 갖췄다.

식품업체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40명의 종업원에게 연금을 지급,주인의식을 갖고 책임감있게 일하도록 했다.

때문에 이직율은 아주 낮은 편이다 이민 1세대격인 정회장은 그동안 식품사업을 시작하려는 후배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고 필요하면 물건까지도 좋은 조건으로 대주었다.

"대부"란 별명은 그래서 나왔다.

"현재 25%선에 브랜드 상품을 늘려나가는등 기존 시장을 더욱 확실히 장악하는게 목표"라는 그는 분명한 타겟 시장을 정해놓고 정말 끈기있게 도전하는게 사업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