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무능력한 외교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과의 마늘분쟁이 재발한데 이어 그동안 무역마찰과는 거리가 멀었던 일본마저 한국산 제품에 대해 첫 덤핑조사를 시작했다.

일본은 지난해만도 한국과의 교역에서 1백13억달러가 넘는 흑자를 거둔 나라.

한국의 무역흑자 기조에 가장 큰 부담을 안겨 주고 있는 일본이 연간 수입액이 6백만달러에 불과한 품목에 덤핑관세를 물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이다.

업계는 일본 정부의 이번 결정은 산업피해에 대한 파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려진 것이라며 일본의 움직임에 안일하게 대응해온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조치가 단순한 무역마찰이 아니라며 일본의 저의를 철저히 파악해 초기단계부터 철저히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정부의 부실한 통상 외교력 =한국 정부가 일본의 반덤핑 조사 움직임을 인지한 것은 지난 2월.

일본 외무성과 경제산업성 등에 몇차례 조사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일본은 이 요청을 무시한 채 조사 개시를 전격 결정했다.

업계는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가 한국 제품에 취한 첫 반덤핑 조사라는 점에 크게 우려하고 있다.

당장 반덤핑관세가 부과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사를 시작키로 했다는 결정만으로도 업계가 받는 충격은 크다.

화섬업계 관계자는 "때마침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로 양국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시점인데도 일본이 초강수를 둘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통상문제에 안일하게 대응해 왔기 때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는 "우리와의 교역에서 1백억달러가 넘는 흑자를 보고 있는 일본이 연간 수입액이 6백만달러에 불과한 품목을 조사키로 한 것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교과서 문제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 사면초가의 통상 환경 =미국 유럽연합(EU) 중국에 이어 일본이 한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나서면서 한국은 이제 4대 교역상대국 모두로부터 견제를 받는 처지가 됐다.

가뜩이나 수출이 부진한 마당에 주력 시장에서 족쇄까지 차게 된 셈이다.

미국은 자국 철강업계 보호를 위해 한국산 철강 제품 등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U는 한국 조선업계가 사실상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저가 수주를 일삼고 있다며 이미 무역장벽규정(TBR)에 따른 조사를 벌이고 있다.

중국은 한국 정부가 마늘을 수입하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다시 휴대폰 및 폴리에틸렌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정부는 특히 2차 마늘분쟁이 작년 협상결과를 뒤집는 중국의 무리한 요구에서 비롯됐는데도 변변한 반론 한 번 제기하지 못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