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정겨운 민요 중에 ''라 쿠카라차''(La cucaracha)라는 곡이 있다.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오랫동안 애창돼 온 이 곡의 제목은 스페인어로 ''바퀴벌레''란 뜻이다.

흥겨운 멜로디와 정겨운 노랫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지만 바퀴벌레만큼 서민들과 오랫동안 함께 해온 곤충이 또 어디 있으랴.

''바퀴벌레''하면 생각나는 영화는 ''조의 아파트''다.

뉴욕 빈민가의 더러운 아파트에서 수만마리의 바퀴벌레들과 함께 살고 있는 ''조''가 주인공이다.

물론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바퀴벌레들은 착한 편이다.

조가 사랑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고,뉴욕에 공원을 지어주기도 한다.

그래도 이 영화를 보면 ''우리는 진정 바퀴벌레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하는 생각이 든다.

바퀴벌레는 약 3억5천만년전 지구에 출현,지금까지 환경에 잘 적응하며 끈질기게 살아왔다.

인간은 겨우 10만년 정도 지구에 살았으니까 따지고 보면 바퀴벌레가 ''지구의 임자''인 셈이다.

바퀴벌레의 종류는 약 4천종인데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대략 30종에 불과하다.

주변에 널린 바퀴벌레들은 실제 바퀴벌레 수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얘기다.

인간이 지금까지 바퀴벌레를 없애기 위해 투자한 연구비는 무려 1조원.그래서인지 바퀴벌레 살충제의 성능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집안에 사는 벌레''들에 대한 통계 조사에 따르면 예전에는 바퀴벌레,개미,흰개미 순이었는데 이제는 개미,흰개미,바퀴벌레 순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1년에 낳는 새끼의 수는 무려 3만5천마리.

아무리 살충제가 강력해도 ''박멸''의 길은 멀게만 보인다.

바퀴벌레는 식탁 치약 본드는 물론 우리 몸에서 떨어지는 비듬 귀지 털까지 먹어치운다.

3억년동안 갈고 닦여진 번식력과 식성,자기 몸의 몇천배 높이에서 떨어져도 끄떡없는 운동신경,주어진 환경에 맞게 생활 패턴을 바꿔 가는 적응력.

이런 것들 때문에 바퀴벌레는 ''핵전쟁이 일어나 인류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유일한 생명체''라고 불리는 것이다.

바퀴벌레를 없애려는 연구보다 그들의 생존 능력을 깊게 연구해보는 것이 인간에게 좀더 유익하지 않을까 싶다.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