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11시10분.

서울 종로구 산업은행 본점 현관 앞.

10여명의 이 은행 임원들이 만사를 제쳐두고 도열해 있었다.

정건용 신임 총재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새 사람을 맞는 이들의 얼굴엔 설렘에 앞서 근심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산은은 대우차 매각,회사채 신속인수제도 등 굵직굵직한 구조조정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 위치와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총재가 8개월만에 돌연 교체되자 은행 안팎으로 말들이 많다.

바로 이때 산은 노동조합이 ''원칙없는 총재 경질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중요한 국가경제현안을 앞두고 자리만들기식 인사로 최고경영자를 바꾸는 것은 국가경제 전체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노조의 반발은 ''낙하산 인사''에 대한 공기업 노조의 으레 있는 실력과시용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산은총재의 교체를 바라보는 금융계의 시각도 노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동안 국책은행으로서 정부 정책과도 보조를 잘 맞추는 등 업무수행에 큰 하자가 없었다''는게 산은에 대한 금융계와 은행내부의 대체적인 평가다.

이런 점을 미뤄보면 이번 인사는 ''짜맞추기식 인사''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산은 관계자들도 "과거 경험을 볼 때 신임 총재가 은행 업무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진두지휘에 나서는데 6개월 정도가 걸렸다"며 "그 기간중 업무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된다"고 털어놨다.

금융계에서도 정 총재가 이끌 산은의 행보에 대해 걱정어린 시각을 서슴없이 비치고 있다.

정 총재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면서 관치금융을 주도했다는 점에서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정 총재는 취임식에서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기능에 치중해온 산은은 앞으로 수익기반을 갖춘 은행으로 거듭남으로써 한국 금융산업을 선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취임 일성이 어떤 모습으로 실현될지 지켜볼 일이다.

장진모 금융부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