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에 빠져든 증시와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금리 인하를 적극적인 무기로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보조 수단으로 쓸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최근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주무 부서간의 파워게임으로도 비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논쟁은 단순히 "경기 부양"과 "물가 안정"에 대한 주무 부서의 책임론을 떠나 세계 각국들의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과 앞으로의 경제전망, 정책수단별 효과를 달리 보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 미국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최근 미국 경기와 증시가 좋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앞으로의 전망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진행되고 있는 주가와 재고 조정이 끝나고 올들어 단행한 금리인하 효과가 나타날 하반기부터는 경기와 증시가 살아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오히려 인플레 조짐이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의 대폭적인 금리 인하는 나중에 인플레 유발과 같은 부작용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금리도 경제 여건을 봐가면서 점진적으로 내려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부시 정부는 침체된 증시와 경기 안정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세금감면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최근처럼 주가 하락에 따른 역(逆)자산효과(주가 하락→자산소득 감소→민간소비 위축→추가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금리를 대폭 내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 일본 =하야미 마사루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해 이후 일본 경제는 완만한 회복국면에 놓여 있으며 금리를 너무 낮게 가져갈 경우 오히려 금융기관 구조조정 지연과 도덕적 해이현상이 우려돼 제로금리 정책으로 복귀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그러나 미야자와 재무상을 비롯한 경제 각료들은 제로 금리를 통한 적극적인 인플레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그동안 정부가 어떤 정책수단을 써도 반응하지 않았던(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 민간 소비가 회복돼야 일본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결국 지난 19일 열렸던 정책이사회에서 제로금리 정책으로 되돌아감에 따라 하야미 총재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 유럽 =최근들어 미국과 일본의 금리인하 추세에 맞춰 유럽도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일부 회원국들의 요구에 대해 뒤젠베르크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 유로랜드의 경제 여건은 미국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실하고 유로화 약세 등으로 인플레 요인이 상존해 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금리를 내릴 필요가 없다는 시각이다.

한편 정도차는 있으나 최근들어 대만을 비롯한 동남아와 중남미 일부 국가에서도 금리 인하를 둘러싼 비슷한 논쟁이 일고 있다.

한상춘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