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졌다.

가장 최근에 나온 성장률수치인 작년 3.4분기(7~9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마이너스 0.6%(전분기 대비)를 기록, 재차 경기후퇴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일각에서는 일본발(發) 세계경제 위기론까지 나오고 있다.

정확한 경기진단과 미래예측으로 일본의 대표적 경제평론가로 높은 명성을 얻고 있는 사이토 세이이치로 릿쿄대학 교수는 "올해 일본경제가 지난해보다 나아질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강국면에 들어선 미국증시와 불안한 아시아 경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일본 내부의 고민거리 등을 감안하면 일본경제가 디플레 수렁에서 벗어나는 것은 2003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뉴욕증시와 나스닥의 주가가 올 여름까지 지금보다 20-30% 정도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와함께 미국경제의 침체가 본격화되면 미 행정부가 "강한 달러" 정책을 포기할수 밖에 없으며 엔화가치는 달러당 1백엔선을 뚫는 강세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사이토 교수를 만나 일본 및 세계경제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들었다.

[ 만난 사람 = 양승득 도쿄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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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의 일본 경제를 어떻게 보는가.

◆ 사이토 교수 =바닥을 더 다지는 해가 될 것이다.

장기불황과 디플레 압력에서 벗어나기에는 악재가 너무 많다.

일본 정부는 2001년도 경제성장률을 1.5% 정도로 잡고 있고 일부 민간 연구기관에서는 2% 이상을 제시하는 곳도 있지만 잘해야 1% 전후에 그칠 것이다.

- 왜 그렇게 비관적인가.

◆ 사이토 교수 =일본 경제는 현재 비행기가 활주로를 막 이륙한 상태로 비유할 수 있다.

다시 내려앉을 수도 있다.

비행기가 안정궤도에 들어서야 조종사도 승객도 안심할 수 있다.

그러나 난기류가 너무 많아 비행기가 추진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

난기류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해외와 일본 내부를 진원지로 한 세가지다.

미국의 주가대조정과 경제성장 둔화, 깊은 환부로 남아 있는 국내금융불안과 앞으로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기업도산, 그리고 리더십 부재로 여전히 표류하는 국내정치 등이다.

비행기의 엔진 힘이 약할때 난기류를 만나면 이를 뚫고 나가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일본정부는 ''경기회복선언''을 해서는 안된다.

비행기내의 안전벨트 착용사인이 아직 켜져 있다는 이야기다.

- 미국 경제가 어떤 형태의 난기류로 작용할 것으로 보는가.

◆ 사이토 교수 =미국 경제가 10년 호황을 누려 왔지만 경제에 ''영원한 번영''은 있을수 없다.

94년부터 불기 시작한 닷컴 기업붐도 2001년부터는 본격적인 조정기를 맞을 공산이 크다.

지난 1월 출범한 부시 행정부도 급격한 침체를 원치 않겠지만 뉴욕증시는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다.

나스닥주가는 작년 말보다 약 20~30% 떨어진 2,000선까지 밀려날 것으로 본다.

유럽과 일본도 미국발 한파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도쿄증시에서는 닛케이평균주가가 1만3천엔 밑으로 내려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증시가 곤두박질치면 달러값이 떨어지고 엔화는 일본경기가 좋지 않은 데도 반사적으로 가치가 급등할 수밖에 없다.

달러당 1백엔을 깰수도 있다.

-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충격이 적지 않을 것 같은데.

◆ 사이토 교수 =주가가 큰폭의 조정을 거치고 경제전반에도 역풍이 불어 닥치겠지만 30년대의 대공황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니 하드랜딩(경착륙)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일본 금융시스템이 그렇게 많이 곪아 있는가.

◆ 사이토 교수 =버블경제가 꺼진 후 지금까지 누적된 불량채권의 청산 속도가 앞으로는 더 빨라질 것이다.

일본은 2002년 4월에 페이오프(Pay Off:예금자 보호장치의 일종, 금융회사가 도산할 경우 1천만엔을 넘는 금액은 보장해 주지 않는 제도)가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예금이동도 물론 예상되지만 은행들은 신뢰도와 건전성에 신경을 곤두 세우지 않을 수 없다.

거래 기업들의 채무탕감 요구를 종전처럼 순순히 들어줄수 없다.

버블때 왕성한 식욕으로 사세확장에 나섰다가 지금 곤욕을 치르고 있는 대표적 업종, 즉 건설 유통 부동산 3개 업계에서 무너지는 기업들이 특히 많을 것이다.

- 기업도산이 피크를 이룰 시기는.

◆ 사이토 교수 =일본은행은 2001년 12월을 불량채권 처리시한으로 잡고 있다.

금융부문의 과거청산을 이 기한까지 해치우겠다는 것이다.

결국 2001년은 과거청산의 최종국면이 될 것이고 무너지는 기업이 줄지어 생겨나면서 디플레압력이 더 심해질 것이다.

- 일본은행은 그래도 일본 경제를 상당히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가.

◆ 사이토 교수 =(웃으면서) 나도 일본은행에서 8년이나 일해 보았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의 뱅커는 30년대의 공황같은 것에 대한 잠재적 불안과 기피심리를 갖고 있다.

그래서 되도록 우울한 단어를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의 각종 지표는 청신호보다 적신호에 가까운 것이 더 많다.

- 금리는 어떻게 움직일 것으로 보는가.

◆ 사이토 교수 =올해에도 초저금리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95년9월부터 재할인율이 1% 이하로 떨어진 후 지금까지 이어져온 초저금리 체제가 비정상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거액부채로 신음하는 기업들의 처지와 충격을 감안하면 일본은행도 당분간 어쩔 수 없다.

지난 주말에 일본은행이 재할인금리를 낮춘 것도 경기회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 일본은 물가가 매우 안정적이다.

지난해 소비자물가는 전년대비 1%나 낮아진 것으로 발표됐다.

◆ 사이토 교수 =물가가 일본 경제의 성장활력을 재는 가장 중요한 잣대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가가 너무 뛰어도 안되지만 최근 수년동안 일본의 도매및 소비자물가는 내리막길 양상을 보여 왔다.

이것은 일본경제가 2차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 후 처음으로 빠진 디플레수렁이라고 단정한다.

디플레 압력은 회복 기지개를 켜려는 일본 경제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가격저하가 지속되면 기업들은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결국 수익구조와 투자 등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 그래도 민간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지 않은가.

◆ 사이토 교수 =현재의 설비투자는 IT(정보기술)관련 기업들이 견인차가 돼 끌고 나가는 양상이 짙다.

다시말해 IT붐에 편승한 선행투자와 ''NTT도코모(일본 최대 이동통신업체) 경기''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적 활황에 의해 파행적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면적이면서도 자율적인 회복세라고는 보기 힘들다.

-일본 기업들에는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는가.

◆ 사이토 교수 =2001년은 일본기업들에 특히 시련의 시기가 될 것이다.

외부 여건이 나빠지면서 기업들간에도 승자와 패자가 더 뚜렷해지고 업계판도도 다시 짜여지는 한해가 될 전망이다.

IT혁명에 의해 유통구조는 대변혁을 겪고있고 외국계 자본은 일본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는데 경영자들의 사고는 별로 바뀌지 않고 있어 문제다.

은행도 4개 그룹으로 재편되지만 세계시장에서 통할수 있는 경쟁력을 갖고 있는 곳은 2개 정도에 불과하다.

금융부문의 과거청산으로 도산기업이 늘어나면 일찍부터 리스트럭처링에 성공한 도요타, 소니, 도시바, 캐논 등의 초일류기업을 중심으로 새 판이 엮어질 것이다.

- 기업들의 판도변화는 소비패턴에도 영향을 줄텐데.

◆ 사이토 교수 =물론이다.

기업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리듯이 샐러리맨들 사이에서도 보수의 차이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수익에 기여하는 직원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차별하는 임금격차의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다.

많이 버는 사람들이 고급명품점과 호화맨션에 몰려가는 반면 저수입 근로자들은 1백엔숍이나 염가의류 매장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소비를 비롯한 사회구조가 크게 바뀌면서 새로운 비즈니스기회는 크게 늘어날 것이다.

- 정치를 일본 경제의 회복을 가로막는 난기류중 하나로 지적했는데.

◆ 사이토 교수 =그렇다.

일본에서는 국민들의 정당,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그 어느때보다 높은 상태다.

20%에도 못미치는 내각 신뢰도가 그 한 표본이다.

올 여름에는 참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일본 정치는 리더십부재, 정당간의 이해관계 등 여러 가지 복합적 이유로 인해 안팎의 난기류에 제대로 대응을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증시는 또 충격을 받게 되고 주가는 바닥을 뚫고 더 내려갈지 모른다.

- 한국 경제에 대한 시각은.

◆ 사이토 교수 =한마디로 한국의 잠재력과 활력에 놀랐다.

97년 경제위기를 맞아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지혜와 추진력이 특히 감명 깊었다.

그러나 노동문제만은 꼭 지적하고 싶다.

일본 재계에서도 한국의 노사분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투자하려 해도 궁극적으로는 노동문제에 대한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각종 대책을 마련하겠지만 2001년은 전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울 것으로 예고된 상태다.

아시아시장도 이미 성장속도가 둔화되고 있다.

여러 외부 악재가 쌓여 있는데 노동문제까지 겹치면 아무래도 다른 해보다 많이 고전할 것 같다.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