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어수선한 연말이다.

해가 바뀐다고 해서 당장 달라질 것이 없는데도 매년 이맘때면 ''내년에는…''이란 화두를 떠올리며 계획도 세워보고 희망도 가져보는 것이 지난 날의 일상사였다.

그런데 올해는 어느 누구도 그럴만한 여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경기위축으로 고통이 쌓여만 가는 가계(家計)는 물론이고,정부나 기업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새해의 시작이 10여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지만 정부의 내년 경제운용계획은 아직도 검토중이고,기업들은 경영계획을 만들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한숨만 내쉬고 있을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내년 경제는 올해보다 어려워질 것이란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민간연구기관들이 내놓은 전망을 보면 경제성장률이 5∼6%에 머물 것이란 예측이다.

올해 예상치 9∼10%에 비춰본다면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으로 급격한 성장둔화를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시스템이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는데다 급격한 민간소비의 위축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됐다.

진행중인 구조조정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하면 제2의 경제위기를 맞이할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주조(主潮)를 이룬다.

그런데 세계은행 등은 최근의 우리경제 상황에 대해 다소 낙관적인 해석을 내놓고 있어 관심을 끈다.

한국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구조적인 경기침체가 아니라 단기적인 성장둔화이기 때문에 우려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19일 워싱턴에서 한국특파원들과 기자회견을 가진 호리구치 요스케 IMF아·태국장은 금년 4·4분기부터 내년 2·4분기까지 성장세가 둔화되겠지만 하반기에는 잠재성장률 수준인 연율 6%대로 회복,2001년 전체로는 약 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란 부연설명을 곁들였다.

문제는 국내연구기관이나 IMF의 경제지표 전망에는 큰 차이가 없는데도 그 해석은 이처럼 비관과 낙관으로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성장률만으로 경제를 진단하는 것 자체가 어설픈 일이긴 하지만 한번쯤 그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도 있다.

사실 지표상으로만 보면 우리경제를 지나치게 비관할 이유는 없다.

올들어 수출증가율이 20%대를 꾸준히 유지해왔고 제조업가동률도 80%를 넘나들었다.

따라서 하반기 이후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지만 올해 전체로 10%에 가까운 고속성장을 시현한 것이 비정상이었다고 해석할수도 있고, 거시적으로 보면 내년의 성장둔화는 정상회귀 또는 다소 어려운 국면으로 진입하는 정도로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IMF의 전망대로 지금의 경기위축이 단기적 성장둔화에 그칠 것인가.

최근의 경기둔화 원인으로는 급격한 민간소비위축이 첫번째다.

민간소비가 줄면 생산이 위축되고 고용감소와 소득감소로 이어져 또 다시 소비위축으로 발전하는 악순환이 나타날수 있고,이는 장기 구조적인 불황으로 나타날수 있다는 것이 앞으로의 경제를 어둡게 보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올들어 주가가 반토막 났고,유가상승 등으로 소득의 해외유출이 늘어나면서 국민소득이 줄어든 마당에 소비가 위축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이는 성장률 등 거시지표만을 경기의 주된 판단지표로 삼는 것이 위험하다는 근거이기도 하다.

철저한 구조조정이 경제회생의 첩경이기는 하지만 급격한 소비위축을 예방하는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도 검토해 볼 때다.

올해 세금을 거둬서 쓰고 남은 세계잉여금이 13조원을 넘는다는게 사실이라면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할 일이다.

흔히 경제불안심리를 극복하는 것이 경제회생의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정부의 정책실패와 정치권의 혼란,그리고 노조의 파업확대 등 사회적 불안까지 겹쳐 더욱 증폭되는 양상이다.

내년까지 지금의 행태가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경제에 대한 낙관은 금물이지만 지나친 비관도 오히려 경제문제를 풀어나가는데 걸림돌이 될수도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모든 경제주체들이 차분한 자세로 내년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가다듬어야겠다. 만사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면 편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