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임 투 킬''에서 흑인아버지는 딸을 성폭행한 백인들이 유죄판결을 안받을 것 같자 법정에서 기관총을 난사한다.

법에 기대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에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셈이다.

''식스 센스''의 아동심리학자는 과거 자신이 소홀히 다루는 바람에 왕따(집단따돌림)를 면하기는 커녕 더 큰 두려움에 떨게 만든 인물에게 살해된 뒤 유령이 돼 옛 의뢰자와 같은 처지의 어린이를 돕는다.

두 작품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법이 해결 못하면 피해자가 직접 나선다는 것과 누군가의 따뜻한 보살핌이 성장기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며칠새 왕따 관련 기사가 2건이나 보도됐다.

초등학생이 친구들의 괴롭힘을 피하려 사설경호원을 대동한다는 것과 법원에서 왕따를 가한 학생과 부모도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왕따문제가 불거진게 어제오늘이 아닌데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듯해 우울하고 참담하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 따르면 왕따현상은 계속 늘어난다고 한다.

부산의 한 조사에선 왕따나 교내폭력을 당해도 선생님과 거의 상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따돌림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이들한테 ''선생님께 말씀드릴까'' 하면 펄쩍 뛴다.

해결은 커녕 사태가 더 나빠지니 참는게 낫다는 얘기다.

물론 담임 혼자 40명이 넘는 반아이들을 일일이 돌보기는 어렵다.

중고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이미 통제불능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교사가 신경쓰면 예방가능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왕따의 대상이 신체적 약자인 경우가 많다는게 그렇다.

교사가 학생들의 교우관계에 관심을 갖고 골고루 등을 두드려주면 외토리가 생겨날 확률은 줄어들 것이다.

우리사회에선 문제가 생겼을 때 잘잘못을 명확히 가리기보다 적당히 덮어두려 하거나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는 시각을 갖기 일쑤다.

피해학생이나 학부모의 호소에 대해 학교와 지역사회가 ''두고 보자''거나 ''양쪽에 다 문제가 있을수 있다''는 식으로 대하는 한 왕따문제의 해결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보도를 보면서 ''타임 투 킬''과 ''식스 센스''를 떠올리게 되는건 그런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