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죽음에 대한 본질적 관념은 고통과 공포다.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고 예측불가능하며 경험할 수 없는 것이란 설명 외에 어떤 공통된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일본의 응용윤리학자 가토 하사다케(加藤尙武)는 죽음의 본질보다 전통적인 죽음의 윤리를 죽음의 수용,살인(자살포함)금지,연명(延命)의 의무 등으로 압축시켜 제시하고 그런 의식이 오늘날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추구하고 있다.

그는 현대인이 죽음을 침착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관심은 오로지 산 자의 존재에만 집중돼 과거에는 살인에 해당하던 낙태,유아안락사,성인안락사,뇌사자로부터의 장기추출을 자행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기술로 생명을 연장시켜가려는 절대적 바이탈리즘(연명주의)에 빠져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본래 불가능하나 노력해야 할 목표라는 의미의 ''연명''은 이제는 도달해야할 목표로 바뀌었다.

연명기술이 발달하면 불의의 죽음은 줄겠지만 인간이 연명을 결정하는 사태도 발생할 것이다.

운명으로서의 죽음은 물러나고 산 자가 생명의 스위치를 끄는 일도 가능하다.

안락사는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행해진다고 한다.

고통을 피하는 최후수단으로 죽음이 선택된다는 사실은 죽음도 공리주의화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제로 생명조작까지 가능해진 지금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윤리적으로는 해서는 안된다는 한계가 언제까지 지탱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법률을 하원에서 통과시켰다고 한다.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는 불치병환자가 이성적 판단으로 동의했을 때 의사가 안락사시킬 수 있도록 했다지만 ''이성적''이란 조건이 문제다.

만약 환자가 비용이나 신앙을 이유로 수혈을 거부했다면 그것도 이성적이라 할 것인지.

''어차피 죽을 사람''이란 식의 윤리의식으로 생명의 가치를 고통이 없는 안락과 맞바꾸게 한다면 인간이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간의 존엄보다 삶의 질이 우선인 현대인은 죽음이란 것 자체를 잊은 모양이다.

안락사 허용문제는 우리에게도 머지않아 닥쳐올 심각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