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진성호는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황무석은 침대에 누워 있고,간병인이 그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진성호는 침대 옆에 앉았다.

황무석은 오른쪽 전체가 마비된 상태였다.

담당 의사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입원한 지 2주일이 지난 지금 눈에 띌 만한 차도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간병인이 병실을 나간 후 황무석이 플라스틱 판에다 수성펜으로 뭐라고 쓰기 시작했다.

진성호는 플라스틱 판에 쓰여지는 글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백인홍에게서 다시 인수한 공장은 제가 경영하겠습니다''

"그럼 황 사장이 인수하겠다는 거요?"

진성호가 묻자 황무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에 인수하겠다는 거요?"

진성호에 잇따른 물음에 황무석은 플라스틱 판에 쓰기 시작했다.

''회장님이 인수한 금액의 반으로 하겠습니다.

나머지 반은 제 침묵으로 갚고요''

황무석은 ''침묵''이라는 단어 밑에 밑줄을 그었다.

이미지의 살인에 관한 침묵임을 진성호는 당장 알아챘다.

진성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좋소.그럼 이제 더이상 다른 요구는 없겠지요?"

진성호의 말에 황무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침묵에 대한 보장이 없지 않소?"

진성호가 정색하며 말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황무석이 얼른 플라스틱 판에 썼다.

"황 사장을 믿을 바에야…내 두 마리 개를 믿겠소…"

진성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물론 황무석에게 들릴 만큼 목소리는 컸다.

황무석의 얼굴에 공포감이 서리는 것을 진성호는 놓치지 않았다.

"골프를 치고 싶지 않소? 우리 둘이 골프를 친다고 상상하며 바람 좀 쐽시다"

진성호는 말을 끝내자마자 침대에 누운 황무석을 두 팔로 안고는 번쩍 들어올려 휠체어에 앉혔다.

그리고 담요로 황무석의 몸을 감쌌다.

황무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별로 반항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 병원에 왔을 때는 황무석의 제의로 진성호가 황무석이 앉은 휠체어를 밀며 병원 구내를 돌아다녔고,그때 황무석이 백인홍의 공장을 인수하라고 제의했었다.

진성호는 황무석이 탄 휠체어를 밀고 병실 밖 복도로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는 몇 층 더 올라갔다가 내려올 모양이었는데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황 사장,백인홍 공장 말이오.노조 파업을 뒤에서 조종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지?"

진성호가 미소지으며 물었다.

황무석이 한쪽 입술을 씰룩이며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갖다댔다.

그러나 황무석의 한쪽 눈은 분명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럼,황 사장이 백 사장 회사를 망하게 한 결정적인 정보도 노조에 주었겠군"

황무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미지한테 편지를 받았소.당신과 병원에서 만났다는 사실과 당신이 한 말을 알려주었소.…당신이 살인을 한 거요,이미지가 아니고"

진성호의 말에 황무석은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