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스무살의 청년 김춘수는 선전(鮮展) 구경갔다가 문단의 대선배인 이광수를 만난다.

이광수 집으로 차를 마시러 간 김춘수는 깜짝 놀란다.

정오 사이렌이 울리자 이광수와 그의 가족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황을 위해 묵념을 하는 것 아닌가''

시인,소설가,비평가로 1인 3역을 하고 있는 장석주(45)씨가 현대 문학 1백년의 역사를 정리한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전5권,시공사)을 펴냈다.

현대문학사에는 백철의 고전적 저작부터 권영민 등의 최근 저술까지 다양한 책이 나와 있으나 국문학자가 집필한 만큼 전문서적이다.

작가 및 작품론조차 아카데미즘에 치중,일반 독자가 읽기엔 딱딱하다.

장석주씨의 책은 저널리즘을 지향,비전공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꾸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장씨는 편년체와 기전체를 종합,1년 단위로 문인 열전을 펼친다.

1935년을 보자.

정지용 유진오 김유정을 연달아 소개하고 있는 이 장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소설가 김유정이다.

스물아홉해의 짧은 생애에 단편 30편을 남긴 김유정.

그는 당대 명창이자 기생인 박녹주를 짝사랑했다.

''어제 저녁 네가 천향원(요리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문앞에서 기다렸으나 너는 나오지 않았다.

그때 너를 만났으면 너를 죽였을 것이다''

김유정은 이같은 내용의 혈서를 보냈으나 박녹주는 김유정을 받아주지 않았다.

김유정은 좌절된 사랑에 신음하며 각혈하듯 작품을 쏟아냈다.

이번 책은 에세이스타일로 문인들의 인생을 적어내려간 일종의 인상비평기다.

저자는 윤동주의 시 ''참회록''에 나오는 ''어느 왕조''가 무엇인지 분석하기보다 윤동주가 소학교를 졸업할 때 김동환의 시집 ''국경의 밤''을 선물받고 탐독했다는 사실,백석의 시집 ''사슴''을 구하지 못해 일일이 손으로 베꼈다는 사실 등을 기억해야 할 정보로 기록한다.

아울러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1945)의 선언을 전문 게재함으로써 역사를 생생한 사실로 전달한다.

문학은 여러사람의 공감·반발·저항을 일으키는 뜨거운 상징이라고 했던 평론가 김현,1960년대 한국문학의 가능성을 넓혀놓고 홀연 신화속으로 잠적해버린 김승옥,1989년 심야의 재상영관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시인 기형도,소설가라기보다 시인에 가까운 윤대녕.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이 다루는 스펙트럼은 넓다.

저자 장석주씨는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를 펴냈던 출판인으로 1992년 음란물 판정 이후 출판사를 접고 8년간 칩거,''한국문학의 탐험''을 완성했다.

장씨는 "마침내 해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며 "내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출품,저작권료를 받고 외국에 팔고 싶다"고 말했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