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그로스 < 국제변호사 Dongross617@cs.com >

어린시절 나는 가끔씩 하늘의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샅샅이 훑어보곤 했다.

혹시 소련 핵폭탄이 우리 마을 상공으로 날아와 터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4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바보같은 망상이었다.

그러나 당시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그럴만도 했다.

온 미국인들은 소련의 핵 공격이 두려워 방공호를 만들고 또 비상식량을 쌓아놓던 시대였으니까 말이다.

10대 때에는 한밤중에 꽝하는 소리를 듣고 깨어났던 기억이 있다.

나는 살그머니 창문 커튼을 제치고 인류를 멸망시킬 ''하얀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길 기다렸다.

그러나 몇분이 지난 뒤 번개만 번쩍였을 뿐,핵폭탄으로 내가 죽게 되는 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전쟁에 대한 공포''는 결혼한 뒤,내 아내가 겪었던 공포에 비하면 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내는 잠을 자다가 가끔 옆집 사람들이 깰 정도의 비명을 지르곤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면 ''북한군인들이 쫓아 오는데도 웬일인지 도망가지 못하는 악몽을 꿨다''고 한다.

60대 초반의 한국인 친구 한명은 지난 6월15일의 남북 정상회담 이후부터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 각인됐던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남북 화해무드와 함께 비로소 사라졌다.

하지만 다른 한국인 친구는 ''과거에 그랬듯이 이 희망의 조짐도 어느날 갑자기 대결과 전쟁위협으로 바뀔 것''이라며 믿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관계가 악화되고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충족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지난 6월15일 이후의 남북상황을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어떤이들은 평화와 화해가 곧 손에 닿을 듯이,또 다른 이들은 극도로 신중히 생각한다.

그런데 견해가 다르다고 서로 갈등 또는 반목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진다.

이들 모두 나라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같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공공의 선(善)''을 위해,나라를 위한 최선의 역사적 결론을 이루기 위해 서로 화해하고 협력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