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드나들 때 경비 아저씨의 얼굴 표정에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특히,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경비 아저씨의 표정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안녕하십니까"라든가 "잘 다녀 오십시오"와 같은 인사 한 마디라도 들으면 최소한 아파트단지를 벗어 날 때까지만이라도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 않고 고의로 그랬든,딴데 신경쓰느라고 그랬든 무뚝뚝한 얼굴을 하거나 외면을 해버리면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도 잠시나마 기분이 틀리게 된다.

어느 때 드나들어도 눈길 한번 주는 법 없을 정도로 인사성이 없어 주민들의 불쾌감이 공감으로 형성되면 그 경비아저씨는 "문제인물"로 거론될 수 있다.

그런데 경비아저씨에게 아침 출근 때만이라도 좋은 표정,따뜻한 인사말을 기대하는 것도 사실은 쉬운 부탁만은 아니다.

야간 경비를 하느라 전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지친 경비아저씨들에게 백화점의 도우미같은 미소와 인사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인사를 기대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아파트 경비실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들어 갔을 때 옆사람에게는 쌀쌀맞거나 경계하는 눈초리를 보낸다.

"나는 기분 나쁜 일이 있어 인상쓰고 다닐테니,너는 다 참아 주며 인사 잘하고 예절 잘 지켜야 한다"는 식이다.

발상이 어쩌면 저리도 다를 수 있을까 할 정도다.

힘없고 어려운 사람에게는 예절을 잘 지키라고 하면서,힘있고 잘 사는 사람의 무례는 이런 저런 이유로 못 본척 한 적은 없는지 다 같이 돌아 보아야 한다.

하기야 오늘날 우리 사회 도처에 심각한 대립과 갈등의 현장이 깔려 있는 것을 보면 "밝은 표정을 지어라,서로 인사 잘 하자"하는 것과 같은 제언을 하기도 어렵다.

길에 나서면 꼴불견이 한,두가지가 아닌 판에 어떻게 미소를 짓고 다닐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 사실 할 말이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사람을 웃지 못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럴수록 서로 기운 차리게 하는 의미에서 의도적으로 웃는 얼굴,상냥한 표정을 지녀야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로부터 인사받을 때 가급적 미소를 짓거나 부드러운 표정을 짓자"는 생각은 나이 들면서 더 자주 하게 된다.

그만큼 실천이 잘 안된다는 의미도 된다.

학생에게 인사 받을 때 선생이 딱딱하거나 무심한 표정을 보이면,혹시 권위는 생길지 몰라도 학생에게는 별로 기분 좋은 기억이 될 수 없다.

선생이 인사 받으면서 별 말없이 씩 웃고 지나가기만 해도 인사한 학생에게는 의외로 마음에 좋은 파장이 생길 수 있다.

엷은 미소나 가벼운 한마디 인사는 "약간의 따뜻한 관심"에 불과하지만 예상외로 좋은 결과를 낳을 수가 있다.

우리 사회는 최근 몇년 사이 통신이 엄청나게 발달하고 있다.

통신이란 무엇인가.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가까이 끌어 들이자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컴퓨터 통신에 빠지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나 그러한 감정의 총량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어디 외로움이나 소외감 뿐이랴.불쾌감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하는 말들이 있는 것처럼,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긍정적인 관심을 담은 표정은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한 직장 내에서 한 집단 안에서 서로 지나치며 미소 한번 짓고 가는 것은 때로는 큰 대결의식이나 갈등을 예방할 수도 있다.

한 사회가 제대로 굴러 가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정신도 있어야 하겠지만 이해심이나 아량도 필요하다.

권위주의가 점점 힘을 쓰지 못하는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긍정적인 관심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작은 긍정적 관심은 나중에 가서는 대화정신,우정,동지의식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필자 약력=

<>서울대 국문과 졸업
<>서울대 국문과 교수
<>월간 문학사상 주간
<>평론집 "한국현대문학의 사상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