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시드니올림픽이 폐막됐다.

새 천년의 첫 올림픽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주최측은 ''환경 올림픽''이라는 주제를 내세웠고,그 이념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가장 부러웠던 것은 호주라는 나라의 쾌적한 삶과 물질적 부를 가능하게 하는 드넓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 환경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부러움을 넘어서 올림픽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문제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이번 올림픽에 대한 매스컴의 관심은 지대한 것이었다.

거의 하루 종일 반복해서 올림픽 경기가 중계됐고,같은 경기를 여러 방송사에서 동시에 내보냄으로써 ''채널 선택권을 봉쇄하는 현상''도 여전했다.

순위와 금메달 숫자에 집착하는 것 역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생각된다.

메달 집계 순위 10위권 안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금메달을 딴 선수들과 그렇지 못한 선수들에 대한 매스컴의 관심은 늘 그렇듯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올림픽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이 다소 유연해졌다고 느낀다.

이를테면 열악한 환경을 딛고 선전한 남자 하키 선수들과,사격에서 아깝게 금메달을 놓친 강초현 선수 등의 ''아름다운 은메달''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따뜻한 것이었다.

야구가 미국에 분패한 것이라든가,여자 농구가 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메달을 따지 못한 것 등은 아쉬운 일이지만, 국민들은 그 아쉬움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

물론 1등을 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고 그를 통해 국위를 선양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승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적인 1등주의는 진정으로 스포츠를 즐기는 태도가 아니며, 우리들의 금메달 콤플렉스는 후진국의 열등감과도 관련돼 있을 것이다.

금메달 숫자로 결정되는 나라의 등급은, 각 나라 엘리트 체육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나라 국민들이 향유하는 생활체육의 질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정부 역시 엘리트 체육에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건강 및 여가와 관련한 국민들의 문화적 삶의 질이며, 그 바탕 위에서 엘리트 체육의 육성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하키가 전용구장 하나 없고 실업팀 세팀 밖에 없는데 은메달을 딴 것은 기적이라는 식의 자부심은 사실 ''부끄러운 자부심''이다.

우리는 그런 풍요로운 체육 문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체육에 대한 지원과 투자는 문화적 삶의 중요한 일부라는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실천돼야 마땅하다.

좀더 시야를 넓혀 보자.

우리 사회는 조급한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결과를 중시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가령 우리의 정치문화를 보면 선거판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것이 정치생명을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는 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사생결단''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정치에 관한 한 ''아름다운 패배''란 말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패배는 무조건 처참한 것이고 1등이 아니면 모두 낙오자일 뿐이다.

이런 와중에서 ''과정의 진실성''을 중시하는 태도는 현실적으로 패배하기 쉽다.

비단 정치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1등주의는 우리 삶의 공간을 야만적이고 살벌한 정글로 만든다.

한 사회의 유연성은 이런 1등주의 혹은 승리 지상주의의 맹목성을 벗어나는 데에 있다.

승패의 문제보다도 어떻게 이기는가,어떻게 지는가를 더욱 중시하는 사회가 온다면 우리는 스스로 옭아놓은 금메달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선수들의 아름다운 패배는 우리가 단지 승리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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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고려대 국문과
△고려대 박사과정 수료
△서울예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