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동공단에서 특수알루미늄 자재를 만드는 옥동공업(대표 라흥열).

이 회사는 올해 15억원을 투자해 생산설비를 늘리려고 계획했다가 최근 보류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자금 신청까지 했었지만 철회했다.

앞으로 경기가 불투명한데 괜한 투자를 했다가 물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반기들어 매출이 제자리 걸음을 하는게 심상치 않다. 앞으로 전망은 더 어두워 보인다. 이대로 가다간 올해 매출은 50억원 정도로 작년의 74억원에 크게 못미칠 것 같다. 이런 판에 투자를 할 수 있겠나"

라흥열(58) 사장은 현재 직원 56명중 10명 정도는 연내에 내보낼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인들은 요즘 ''경기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생산이나 가동률 등 지표경기는 아직 나쁘지 않다.

그러나 경기심리는 이미 수렁에 빠져 있다.

조만간 불경기가 닥칠 거라는 예감에 잔뜩 움츠려 있는 모습이다.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투자를 하지 않고 불경기 대비에만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내수에 의존하고 있는 경공업 분야에선 이런 현상이 뚜렷하다.

물론 첨단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기업 등 경기 무풍지대에 서 있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중소기업 현장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표상 중소기업 경기는 아직 괜찮은 편이다.

지난 8월중 구로 반월 창원 등 전국 25개 국가산업단지의 평균 공장가동률은 85.3%.

전달보다 0.9%포인트 떨어진 것이긴 하지만 작년 같은 달에 비하면 2.7%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또 ''공장가동률 85%선''은 예년의 호경기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8월중 전국부도율도 0.18%로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피부에 와닿은 체감경기.

일부 중소기업엔 벌써 찬바람이 불고 있다.

제일 심각한게 투자위축이다.

"인천지역 중소기업에 배정된 8백64억원의 설비자금중 9월말 현재 자금을 쓰겠다고 신청된 규모는 7백23억원(1백61개사)에 그친다.
예년 같으면 배정금액의 1백20% 정도를 신청했을 텐데 올해는 매우 부진하다"

중진공 신태권 인천지역본부장은 요즘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투자자금을 써달라고 부탁할 정도라고 전했다.

이같은 투자부진은 기계업체들의 수주악화로 이어져 조만간 경기지표에 영향을 미칠게 뻔하다.

게다가 대우자동차 협력업체들이 몰려있는 인천지역의 경우 자금난에 쓰러지는 업체들이 나오기 시작해 분위기가 더욱 심상치 않다.

매출 2백억원대의 대우협력사인 삼웅기업(대표 맹혁재)이 지난 9월18일 부도를 내자 ''드디어 올게 왔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대우차 협력업체 모임인 ''협신회'' 관계자는 "대우차 협력업체들은 한계상황"이라며 "연쇄부도는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의 불안심리는 공장 매물이 늘어나는 데서도 읽을 수 있다.

"지난 7월부터 공장 매물이 늘기 시작해 지금은 하루 평균 5개 정도씩이 나온다. 현재 새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공장만 1백건이 넘는다.
주로 땅값이 더 싼 지방으로 옮기거나 자가공장을 팔고 임대로 바꾸려는 기업 때문이다"

인천 시화 안산 등의 공장 매매를 중개하는 일사천리공장컨설팅 김복영 사장의 설명이다.

덩달아 땅값도 떨어져 상반기까지 평당 1백30만원 하던 이 지역의 공장부지 매매가가 최근엔 1백만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난 7월 이후 창업 열기가 주춤한 것도 무관치 않다.

세기브라콤 김영수(51) 사장은 "앞으로 경제가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 사라진게 제일 큰 문제"라며 "주가하락 유가상승 환율불안이 중소기업인들의 심리를 옥죄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사장은 특히 "환율이 폭등했던 시절 수출단가를 내렸던 회사들은 지금 달러당 1천1백원대의 환율에서 도저히 마진을 못낸다"며 "환율이 떨어지면서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물론 아직도 호황을 구가하는 업체도 없진 하다.

반도체장비나 기계 화학 등 중공업 분야의 수출업체들은 매출호조가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후공정 장비를 생산하는 선양테크(대표 양서일)의 경우 올 매출이 작년의 두배가 넘는 3백60억원에 달할 예상이다.

''내수.경공업과 수출.중공업''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기업인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경기는 곧이어 지표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본격적인 불경기가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퍼지고 있다.

기협중앙회가 전국의 1백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최근 조사한 8월중 경기실사지수(BSI)는 93.

현장의 경기심리를 보여주는 BSI가 100 이하로 떨어진건 올들어 처음이다.

BSI가 100 이하라는 것은 경기가 전달보다 나빠졌다는 업체가 좋아졌다는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많다는 뜻이다.

지난 7월중 BSI는 103이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