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래 < 한국외대 교수 / 과학사 >

나라 꼴이 엉망이다.

누가 무엇을 어찌 잘못하고 있는지는 서로 견해가 다를 수 있겠지만,근원은 우리 사회가 부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지난주 발표된 국제기구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국의 부패지수가 세계 48등이라고 한다.

국제투명성기구가 14일 발표한 2000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4.0점(숫자가 낮을수록 부패 정도가 심함)을 얻어 90개국 가운데 48등을 차지했다.

그런 가운데 열리고 있는 시드니올림픽에서 한국은 20일 현재 12등을 차지하고 있다.

금 2,은 4,동 4개의 메달로 12등인 것이다.

그런데 이 ''부패지수'' 조사에서 1,2,3등을 차지해 가장 맑고 밝은 사회로 평가받은 핀란드 덴마크 뉴질랜드 스웨덴 등은 올림픽 메달수에서 전혀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메달 획득 경쟁이 가열화하는 가운데 이런 말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올림픽에 대한 생각부터 고쳐야 우리 사회 부패지수도 나아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올림픽 결과를 보도하는 외국 신문을 보면 우리와 다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메달집계 방식이다.

내가 검색한 일본 신문(아사히,요미우리)엔 금메달 순서대로 국가별 메달수를 적고는 있지만,제일 오른쪽에는 메달 총수를 밝히고 때로는 그에 따른 등수를 밝혀 놓고 있다.

그러니까 이 일본식 메달집계표를 보면 9등인 일본에 이어 한국이 12등에 적혀 있지만,메달수로는 오히려 일본이 7개 뿐이어서 12등이 되고 한국이 10개로 8등임이 밝혀져 있다.

미국의 경우(뉴욕타임스,USA투데이)에는 아예 메달 총수로만 순서를 적어 놓아서 한국이 8등에, 일본이 12등에 올라있다(집계시간 차이 때문에 일본과 미국 보도는 조금 다르다).

스포츠란 무엇인가.

그것이 국가의 수준을 나타내는 무슨 지표가 될수 있을까.

오히려 오랜동안 한길에 정진해 뛰어난 투혼을 발휘한 젊은이들의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기는 하지만,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또 아무리 박대받는 종목이라 해도 세계가 겨루는 대회에서 1등 2등 3등을 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그런 대회에 자기 나라를 대표해 선수로 참가했다는 것부터가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메달 딴 모든 사람은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하고도 남을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부패지수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번 올림픽부터 메달수 집계 방식을 고쳤으면 좋겠다.

미국인들이 하는 것처럼 메달 총수를 기준으로 나라별 순위를 발표하라는 말이다.

올림픽의 메달 문제를 생각해,어느 분야에서나 2등 3등도 다 훌륭한 것이란 의식을 심어가려는 노력을 하노라면 한국 사회도 그만큼 더 맑고 밝아질 것이 분명해서 하는 말이다.

정치를 하는 모든 사람이 꼭 대통령을 해야 직성이 풀린대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대학 교수가 모두 총장을 해야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해서야 어디 대학이 존재나 하겠는가.

나는 평생을 과학사라는 아주 자그마한 분야를 공부해서 남에게 크게는 뒤지지 않는 전문학자가 되려고 노력해 왔다.

말하자면 올림픽의 인기없는 종목에서 쇠메달이라도 하나 얻어 보려고 애써 온 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농부는 자기 쌀이 마을 전체에서 으뜸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 때,그것 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이 될 것이다.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 대우가 따라야 할것도 물론 중요한데,이를 조정해 주는 역할은 정치가 담당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는 나름대로 노력하며 사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대우를 하기 위해 노력하기는 커녕,패거리를 지어 높은 자리를 점령하기에 바쁘다.

그리고 높은 자리는 온통 부패하기 쉽게 놓아 둔채 사리사욕 챙기기에 급급하니 올림픽에서 10등 이내라는 이 나라가 부패지수에서는 48등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선 올림픽 등수 표시 방법만 바꿔도 부패지수 몇 등은 저절로 올라가리라고 생각한다.

지금(20일 현재) 상태로 한국이 12등에서 8등이 되기 때문에 바꾸자는 말이 아니다.

2등 3등도 마찬가지로 자랑스럽고 중요하다는 의식을 심기 위해 하는 말이다.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