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프레드 호리에 제일은행장이 캐나다 밴쿠버로 10일간 여름휴가를 떠난 것이 뉴스가 돼 경제신문에 난 것을 보고 우리에게 무엇인가가 잘못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

더구나 ''국내의 토종 은행장들은 감히 엄두도 못내는 긴 휴가기간''이라는 대목에서는 ''토종''은행장들이 측은하게 생각됐다.

적자로 문 닫을 위기에 있던 제일은행을 올해 들어 흑자로 반전시키고,나아가 이미 12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정부에 2조6천억원의 공적자금을 추가로 요청하고 떠난 휴가라 얄미움이 깔려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필자는 공직생활 동안 한번도 마음 편하게 휴가다운 휴가를 못 가고 지내왔다.

정해진 휴가도 못가거나,날짜를 줄여서 간 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한번도 휴가를 못갈 만큼 일이 많다거나,필자가 없으면 일이 안된다고 생각해 자의로 그런 게 아니라 상사의 지시나 분위기에 눌려서 그렇게 했다.

어느 핸가 여름휴가를 맞아 어머니 혼자 계시는 시골에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려는데 상사의 지시를 받은 부하가 나를 붙잡으러 왔다.

만나지 못했다고 보고하라 말하고 떠났으나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선산에 성묘하고는 이틀만에 돌아왔는데 그때 상사의 눈치가 곱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 후부터는 대세에 따랐다.

어느 해 주요 정책을 추진하고 있을 때 장관으로부터 여름휴가 중지지시가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동료가 "나는 장관을 시켜주면 휴가는 커녕 아예 장관실에 침대를 놓고 집에도 안가고 하루 24시간,1년 3백65일 일하겠다"고 비아냥거리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집무실에 야전침대를 놓고 집에도 안가고 일한 청와대 경제수석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근무결과는 모두가 ''별로''였다고 평가한다.

장관이 일요일에 사무실에 나오거나 휴가를 가지 않으면 간부들은 모두 그렇게 따라하는 게 관계의 풍토다.

토요일 골프치러 떠나며 일을 시키고는 월요일 아침에 보자고 하는 장관이 야속하기 그지없었으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시키는대로 하며 지냈다.

장관이 퇴근 안하면 일이 없어도 하는 체라도 해야 하고,해가 지면 자장면 먹으며 바둑이라도 두고 있어야 조직에서 살아남는 길이었다.

1978년 워싱턴에서 3개월간의 연수를 마치고 귀국채비를 서두르고 있을 때 싱가포르에서 온 친구는 그의 부인과 함께 2주간 유럽여행을 하고 귀국한다기에 얼마나 부러웠는지….싱가포르 정부는 공무원이 해외출장을 가면 어차피 호텔 숙박료는 같으니까 비행기 값만 자기가 부담하면 부인의 동반을 허용하고 정해진 휴가도 이때 사용하도록 권장한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국제회의에 간 장관을 별로 긴급하지도 않은 일로 불러들이고,행장들이 동부인했다가는 경을 칠까 겁내는 현실이 우리와 싱가포르의 차이인 것 같다.

사람은 1주에 하루를 쉬어야 정상기능을 하고 땅도 7년에 한번은 휴경해야 제 소출이 난다고 한다.

격무에 시달리는 세계의 CEO들은 한해에 2주 정도의 휴가를 가는 게 보통이다.

일본의 오부치 전 총리는 주말도,휴가도 없이 쉬지 않고 일하다 관저에서 쓰러져 별세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세계의 일을 다 하면서도'' 캠프데이비드 별장에서 골프치며 여름휴가를 즐기다가 지금 여유있게 내년의 퇴임을 준비하고 있다.

정해진 일은 사람보다 로봇이 더 잘하는 디지털시대를 맞아 인간의 노동은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

CEO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 나서고 끊임없이 기존의 틀을 깨면서 혁신을 단행해야 그 기업이 살아 남는다.

''토종'' 은행장들도 호리에 행장같이 10일휴가를 가라.그리고 조직이 일하도록 해라.부하들을 안식도 휴가도 없이 붙잡아 피곤하게 만들고 또 스스로를 일상에 감금시켜 루틴한 일과 생각만 되풀이하면서 죽을 기를 쓴다고 금융이 개혁되고 워크아웃이 잘되는 것이 아니다.

행장이 휴가 간다고 일이 안된다면 부행장에게는 월급을 주지 말아야하며 그러한 조직은 죽은 조직이다.

버티고 앉아 ''개혁피로감''만 가중시키고 조직을 죽일 바에야 휴가를 자주 가는 것이 낫다.

그래도 조직이 살아나지 않으면 무기한 휴가를 떠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