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도산이라는 말이 있다.

땅 건물 공장 등 자산도 많고 장부상으론 흑자가 나는데 회사가 넘어지는 경우가 그것이다.

현금이 없으면 회사영업이 아무리 잘 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금형태로 들고 있으면 이자수입이 없어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현금이 은행이자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수익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현금은 그만큼 위력적인 자산이다.

"집 짓고 망한다"는 말도 있다.

새 건물을 잘 지어 놓으면 가구도 새로 들여놔야 한다.

한 두 평으로 족하던 개인공간이 서너 평으로 늘어난다.

새 의자와 책상에 앉으니 신분이 한 단계 높아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자동차도 새로 바꾸고 싶고,음식도 한 단계 높여 먹고 싶다.

멋진 휴가가 머리를 뱅뱅 맴돈다.

새 고객을 찾아 나서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이제 좀 느긋하게 쉬어도 되겠다는 안일 속에 빠진다.

결국 느는 건 기하급수적인 현금수요뿐이다.

은행잔고가 달랑달랑 메마른다.

자금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소문이 시장에 퍼진다.

전주들이 하나 둘씩 돈 빼가기에 바쁘다.

결국 종국을 맞는다.

실제로 우리주변에 집짓고 망한 기업들은 얼마든지 있고 그래서 이 말은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는 경구다.

남북교류가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그 교류가 이상한 교류다.

현금이 한쪽으로만 흐르고 있다.

우리가 북으로 가서 공연을 해도 현금이 나가고 북에서 내려와서 공연을 해도 현금이 나간다.

한 두 번이면 모를까 이 괴상하기까지 한 거래는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경의선과 경원선을 연결하면 유럽까지 연결되는 물류라인이 열린다지만 물류에서 현금이 쏟아지려면 적지않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북한에 공장을 지으면 싼 노동력을 쓸 수 있다지만 이것도 수년씩 걸리기는 마찬가지다.

남북이 화합하면 시베리아와 일본을 잇는 프로젝트가 경제성을 가질수 있다고 하지만 이것도 하루 이틀에 될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금이다.

흑자도산을 막을수 있는 충분한 현금이 있어야 한다.

현금이 없어 도중에서 포기하려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런데 우리에겐 현금이 없다.

밖에서 돈을 끌어올 수 있는 "현금 동원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여의치 않다.

꿈같은 경의선,시베리아개발,북의 싼 노동력에 쉽게 현혹되는 외국인이 없다는 뜻이다.

뉴욕 한국물 발행시장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가을 외환은행이 5억달러의 외자를 도입하려다 포기한 이래,한국업체가 외자도입에 성공한 예는 지난 3월 하나로통신이 4억달러를 끌어들인 것이 유일하다.

이것도 통신부문에 대한 특수를 투자자들이 예외로 인정한 것일 뿐 포철,담배인삼공사,다음커뮤니케이션 등도 기회포착을 못하고 쩔쩔매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전멸상태다.

지난달 23일 IMF는 한국에게 "졸업장"을 쥐어주었다.

조기졸업을 축하하면서도 "과연 나가서 제대로 살수 있을까"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던 졸업식이었다.

졸업식에서 IMF가 표시한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는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끈다.

영국 리드대 아이단 포스터-카터교수같은 이는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IMF는 한국에 대해 불가능한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야 하고 남한에도 손볼 것이 많은 한국이 어떻게 재정을 짜임새있게 운영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었다.

한국정부는 늘어나는 외화보유고를 들먹이고 있지만 잘못 읽히면 오히려 한국정부 스스로의 불안심리를 드러내는 결정적 증거로 읽힐 수도 있다.

남북경협은 "현금만 먹는 하마"라는 인식이 외국인들에게 팽배해 있는 것이다.

한국의 해외 현금동원력은 날로 메말라가고 있다.

워싱턴 특파원 양봉진 www.bjGlob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