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 < 연세대 교수 / 경제학 >

최근 차세대 이동통신 IMT-2000 기술표준 선정을 둘러싸고 동기방식을 옹호하는 측과 비동기방식을 옹호하는 측간의 논쟁이 뜨겁다.

동기식 옹호론자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장비.기기 제조업체들이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동기식 기술의 집중육성을 주장한다.

비동기 진영에서는 세계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비동기식 기술투자와 기반강화를 통해 해외시장 진출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두 일리가 있다.

제2세대 CDMA 기술로부터 진화한 동기식(cdma-2000)은 국내 장비 및 기기 제조업체들이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적 기술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동기식이 차세대 이동통신에서 배제된다면 축적된 기술과 인력의 활용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반면 유럽식 GSM을 기반으로 하는 비동기식(W-CDMA)의 경우 국내 업체들이 비교열위에 있으나 세계시장 비중과 범세계로밍을 감안할 때 적극 육성돼야 하는 기술이다.

비동기식은 전세계 IMT-2000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미 발표한 IMT-2000 사업자 선정방침에서 단일 기술표준을 정하지 않고 서비스사업자의 자율에 맡기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부의 발표를 아무도 그대로 믿지 않고 있으며 정책당국도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인다는데 있다.

즉 겉으로는 복수표준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업계에 대한 행정지도와 압력을 통해 정부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의도쯤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달말까지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업체들은 한편으로 정부의 눈치를 살피고, 다른 한편으론 기술표준에 관한 언급이 빠져 있는 미완의 사업계획서를 보면서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IMT-2000 기술방식의 선택은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

서비스사업자는 기술표준 선택이 향후 자사의 경쟁우위 확보와 시장점유율에 결정적이다.

때문에 신중히 선택할 수밖에 없다.

서비스사업자는 자사 역량과 국내외시장 흐름, 경쟁사의 전략 등을 감안해 국내시장에서의 입지강화뿐 아니라 해외시장 진출까지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동기식 핵심기술의 지식재산권은 미국의 퀄컴사가 상당부분 장악하고 있는 반면, 비동기식 핵심기술 지재권은 에릭슨을 위시한 구미의 여러 회사들이 나누어 갖고 있다.

기술방식 채택이 진정으로 시장자율에 맡겨진다면 퀄컴이나 에릭슨 등은 일부 국내 사업자들이 자기 방식을 채택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파격적인 로열티 인하나 적극적인 기술이전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두 방식을 배분한다면 어차피 일정시장을 확보할 수 있는 이들 외국 기업으로선 로열티 인하나 기술이전 유인이 적다.

장비 및 기기 제조업체들도 국내시장에 연연하지 말고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기술 개발과 위상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우리나라 통신기기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으며 수출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대부분 단말기에 국한되고 있다.

시스템장비 분야의 역량 미흡, 원천기술 부족과 핵심부품의 높은 수입 의존 등으로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는 국내 장비.기기 제조업체들이 세계시장에서 선진업체와 맞설 수 있는 기술 개발보다는 내수 중심의 조립 판매에 주력한 바 크다.

정부는 서비스사업자가 기술표준을 자율적으로 채택하고, 장비기기 제조업체들이 이를 원활히 수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특히 다수 사업자들이 비동기방식을 채택할 경우 이 분야의 기술 수준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대학과 국책연구소를 통한 연구 지원을 모색해야 한다.

서비스사업자는 국내외시장 여건을 잘 파악, 시장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기술표준을 채택해야 하며 그 책임은 전적으로 기업이 져야 한다.

제조업체는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기술개발과 시장개척에 주력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보통신산업 미래는 세계적 무한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우수한 경쟁력 확보에 달려 있음을 모두가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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