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는 9일 전경련 최고경영자 조찬간담회에서 "98년 신용경색과 현재의 신용경색은 그 성격이 다르다"며 "정책접근방식도 달라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통화신용정책은 일반적으로 무차별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데 반해 현재의 신용경색은 일부 중견대기업에 집중돼 있어 중앙은행이 대처하는데 제약이 따른다"고 털어놨다.

따라서 "과감한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만이 신용경색의 재발을 막는 유일한 처방"이라고 강조했다.

◆98년 신용경색과 현재의 다른 점=전 총재는 신용경색의 원인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에 나타난 신용 경색은 은행과 종금사 등 간접금융기관의 대출여력이 부족해 발생한 ''간접금융형 신용경색''이었다"고 진단했다.

반면 최근 신용경색 현상은 투신사나 은행 신탁계정이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제대로 인수하지 못해 발생하는 ''직접금융형 신용경색''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자금압박을 받는 대상 기업도 상이하다.

외환위기 직후엔 은행 대출 의존도가 큰 중소기업에 직격탄이 됐다.

최근엔 직접금융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중견 대기업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98년 당시는 극심한 경기침체기에 고금리 시대였지만 지금은 성장기인데다 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구조조정이 근본적인 해법=신용경색의 성격이 다른만큼 처방도 달라야 한다는 게 전 총재의 지적이다.

그는 "현재는 98년과 달리 경기가 성장세를 지속하고 금리도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데다 재정도 적자상태"라며 "추가로 금리를 내리거나 재정지출을 확대할 여지가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또 "신용경색의 대상이 중소기업이었던 98년엔 중소기업 대출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중앙은행 차원에서 정책을 구사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대기업이 자기신용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직접금융시장의 문제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유인책을 구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전 총재는 "직접금융시장은 은행 대출에 비해 투자자의 심리적 안정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직접금융시장의 경우 투자자들이 심리적 동요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비정상적인 군집(群集)행동(herd behavior)이 나타나기 쉬운데다 기업간 신용 차별화 현상이 심하기 때문이다.

전 총재는 "지금의 신용경색이 일부 대기업의 신용위험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투자자의 신뢰회복을 위해선 기업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부실기업을 신속히 정리,시장에 팽배해 있는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게 그의 처방이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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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설명 ]

<> 직접금융,간접금융

기업들이 필요한 돈을 조달하는 방법은 직접금융과 간접금융으로 나뉜다.

직접금융이란 기업이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필요한 자금을 직접 조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기업이 은행이나 상호신용금고 등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간접금융에 대응되는 개념이다.

자금공급자인 가계와 수요자인 기업 사이에 금융기관이 개입하기 때문에 간접금융이란 말이 붙었다.

직접금융은 간접금융에 비해 자금조달 기간이 장기이기 때문에 기업의 설비투자에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올들어 직접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기업들의 간접금융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

올들어 지난 7월까지 은행대출 증가액은 40조원을 넘어 지난 한햇동안 은행대출증가액(42조3천억원)에 육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