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9세인 우리 어머님이 정말 살아계시단 말입니까”

북한적십자사로부터 넘겨받은 북측 이산가족 생존확인자 명단에 최고령자인 어머니 구인현씨가 들어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장이윤(71·부산 중구 영주동)씨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며 말문을 열지 못했다.

“어머니는 막내인 저를 유독 아껴 언제나 떡이나 과자를 남겨뒀다 주시곤 하셨죠”

장씨는 아직도 따스한 어머니의 체온이 온몸에 다가오는 듯 하다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8세까지 어머니의 젖을 빨 정도로 어리광을 부렸다는 장씨는 고을원님 며느리출신이었던 어머니는 언제나 빙그레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현모양처였다고 기억했다.

평북 용천면 외산면 출신인 장씨가 가족들과 헤어진 것은 지난 50년. 7남3녀중 막내인 장씨는 1·4후퇴때 단신으로 월남했다.

막내였던 그를 유달리 걱정했던 어머니는 평양에 있던 먼친척에게 장씨를 혼자 맡겼다.

남자들은 모두 징병한다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장씨는 친척들과 대동강을 넘어 피란길에 올랐으나 피란길속에 친척을 잃어버려 혼자 남게 됐다.

지난 60년 인천에 정착,전기용품제작업체인 한광애자공업사를 열어 큰돈을 벌기도 했다.

그러나 60년 영화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번돈을 몽땅 날렸다.

70년 부산에 내려와 지금 집근처인 동구 수정동 달동네에 정착했다.

장씨는 이제 둘째아들 윤용(36)씨와 함께 사하구 하단동의 국제주방종합유통에서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40세때인 70년 박순이(62)씨와 결혼해 현재 2남1녀를 두고있다.

장씨는“어머니가 돌아가신줄 알고 결혼후 명절때면 제사를 지내왔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며 기뻐했다.

막내 장씨는 어머니에 대한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

“어머니의 치아가 나쁘시다면 먼저 보철이라도 해주고 싶습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