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가장 한국인다운 삶의 모습일까.

이 문제는 민족의 "자기결정권"에 관한 문제다.

과학기술 사회체제 국제환경 등 많은 요인이 영향을 미치지만,핵심적인 것은 민족의 바람직한 생존 모습에 관한 가치판단이다.

하나의 해답은 지식정보화 시대에 어울리는 신지식인 개념이다.

반론도 있었고 오해도 있었다.

그러나 시장경제나 생산만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 교육 언어 심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인간형이 필요하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6.15 남북 정상회담을 경유하면서 새로운 과제가 제기되고 있다.

남북한이 공유하는 통일시대 한국인상의 정립이 바로 그것이다.

그 배후에 흔히 "김정일 쇼크" 또는 "김정일 신드롬"이라 부르는 현상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고정관념의 파괴로 이어지는 희망의 거점이다.

사실 남과 북은 극단적인 불신속에 대결과 분열의 길을 걸었다.

전쟁의 참화는 높은 증오심을 양쪽에 팽창시켰다.

그러던 터에 "공산주의자에게도 도덕이 있다"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언명과 이에 따른 행동은 우리에게 너무도 한국적인,따라서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충격을 넘어 신선한 자극이자 영감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것이 아무리 연출된 것이었다 해도,고정관념속에 가정했던 것과는 달리,남북한 사이에 상호 이해와 협력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전통과 현대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이다.

사실 우리는 전통은 고루하고 낡은 것,버려야 할 발전의 장애물 정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신념이 아직도 옳다면 "김정일 쇼크"는 무시해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전통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야만적 근대화가 바로 병리적인 것이다.

따라서 탈현대 또는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전통의 복원 또는 재창조가 시급한 과제가 된다.

우리가 "김정일 쇼크"에서 당혹감과 자괴심을 느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돌진적 근대화과정에서 우리가 지나치게 소유욕구에 집착하고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의에 익숙해진 나머지 거의 상실해버린 전통문화가 북한에 보다 온전히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우리의 잃어버린 원래의 모습이 아직 살아 있는 곳,타자화된 자아의 거울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 점이 우리에게 많은 자극과 상상력을 제공해 준다.

아무튼 남북 교류와 협력의 시대를 맞아 이젠 모든 발전의 토대가 될 한국인의 정체성문제를 심도있게 규명해야 때가 됐다고 확신한다.

평균적인 남한 사람은 고도로 도시화됐고 자유분방하며 권위에 도전적이다.

경쟁적이고 타산적인 도시 깍쟁이로 변했다.

번창하는 물질적 가치와 집단 이기주의의 이면에서 전통문화는 갈수록 힘을 상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평균적인 북한 사람은 농촌의 품성을 지닌 것으로 관측된다.

뿌리 의식이 강하고 권위에 순종적이며 집단주의 문화속에 산다.

신의와 예절을 중시하며 체면과 자존심에 민감하다.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질서와 안전을 중시하는 전통문화가 강하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남북한 주민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한국인상에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 것인가.

차이가 있다면 이것을 서로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

공통점은 어떻게 더욱 확산시켜갈 수 있는가.

경험적 표본조사를 할 수 있다면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

남북대화에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현안 과제들이 많다.

하지만 남북한 주민들 사이에 마음의 공동체를 여는 노력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없다.

절실히 필요한 것은 서로가 마음의 문을 넓게 여는 것이다.

근거없는 우월감은 금물이다.

남한처럼 전통으로부터 단절된 물질 위주의 삶도,북한처럼 세계로부터 단절된 전통적 삶도 대안일 수는 없다.

대안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 세계를 향하여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한국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 남과 북이 같이 참여할 수 있고 협력할 수도 있다.

또 서로 배울 수 있고 변화해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