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진성호는 황무석이 대해실업의 주가조작 관련 녹음 테이프를 가지고 있는 치안국 김 계장을 꼭 설득시키기를 바랐다.

"회장님,그리고 혹시 필요할지 몰라 회사의 비자금 중 3천만 원을 제 앞으로 가불해서 가지고 있습니다. 돈을 쓰지 않고 해결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잘 하셨어요 몇 억 원이 들어도 문제를 해결해야지요. 황 부사장님이 회사를 살리는 겁니다.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진성호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황무석 앞에서 진성호가 고개를 숙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슨 말씀을..."

"그런데 장인이 녹음테이프를 수사기관에 제출한 이유가 뭘까요?. 혹시 장인이 제가 사주하여 고의로 사고를 냈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진성호가 황무석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제가 들은 정보로는 오늘 새벽 이정숙 교수의 실종 신고를 했을 때 이인환 교수가 실수로 엉겁결에 테이프를 언급하게 되었고 수사기관에서 테이프 제출을 유도한 것으로 압니다. 수사기관에서는 이정숙 교수가 아침에 병원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회장님을 의심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걸로 압니다"

"우발적인 자동차 사고는 확실합니까?"

"그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황무석이 자신 있게 말했다.

"자,그럼 나가지요"

진성호가 일어났다.

"제가 오늘밤 핸드폰을 열어놓을 테니 일이 어떻게 진전되는지 알려주세요. 시간은 상관하지 마세요. 오늘밤 깨어 있을 거니까요"

진성호가 탈의실로 가면서 말을 이었다.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입으면서 진성호는 건너편에서 옷을 입는 황무석에게 힐끔 시선을 보냈다.

그때처럼 황무석이 듬직하고 믿음직하게 보인 적이 없었다.

소위 성실하거나 성실한 척하는 자들은 따지고보면 자기 생각만 하는 이기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평소 황무석에게 가지고 있는 생각,즉 두뇌가 뛰어나고 대인관계도 원만하며 자기 절제를 할 줄 알고 무엇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인간이지만,양심이라는 것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다.

황무석은 양심은 없지만 그 대신 겉모양뿐이겠지만 의리를 지닌 인간이고 일을 해결하려는 데는 무서운 의지를 가진 사나이로 보였다.

양심?

진성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양심...

이 시대를 사는 사람 모두에게 그것은 자신의 무덤을 파는 도구일 뿐이고 낙오자의 변명이고 위선자의 애용물일 뿐이었다.

그는 양심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황무석이 갑자기 부러워졌다.

탈의실에서 나온 진성호는 황무석이 보는 데서 회사 경리담당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이사,황무석 부사장이 가불한 돈은 내 앞으로 해놓으세요.
그리고 현금으로 3천만 원을 내 기사 편에 보내주세요"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옆에 있던 황무석이 말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필요해서 그래요"

진성호가 정동현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