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

첨단기술시대를 연 주역으로 꼽히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창업자 빌 조이는 얼마전 자못 파격적인 발언을 했다.

로봇공학,유전공학,나노기술이 고도로 발달돼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 사람들이 무기력해져서 "인류의 종말"과 같은 위험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빌 조이가 말하는 미래의 인류 위기가 내가 최근 언급한 "포스트휴먼"( posthuman )이라는 개념과 유사한 것이냐고 종종 질문한다.

"포스트휴먼"은 사실 인간의 본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유전공학쪽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유전공학은 인간의 내부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로봇공학과 나노기술과는 구별된다고 생각한다.

조이가 경고한 기술문명의 위협은 기본적으로 인체에 해를 끼치는 외부적인 요인들이 대부분이다.

컴퓨터바이러스(혹은 생물학적 바이러스)니 로봇이니 하는 인간의 제어력을 위협하는 것들 말이다.

물론 이런 문제들도 심각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유전공학에서 야기될 위험은 차원이 다르다.

DNA의 재조합 등 유전자조작이 가능해지는 것은 인간의 영( soul )이라는 영역에 해당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로 인한 변화는 상당히 미묘해서 뭔가 일이 크게 터진 다음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기 십상일 것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고찰해보자.

프랑스혁명에서 냉전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여러가지 독트린들이 역사속에 등장하고 사라졌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해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사회의 조정능력은 한계를 드러내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추구 여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정치이념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내가 주장했던 "역사의 종말"은 바로 이런 의미다.

그러나 어쩌면 20세기에는 유년기 사회화나 아지프로(주로 문학 연극 음악 회화 등을 통해서 행해지는 교육선전) 노동운동 등 대부분의 사회적 도구들이 인간 행위의 본질적인 기층을 바꾸기에는 너무 미숙했었는지도 모르겠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인류는 지난 세기에 실패했던 "인간 본성의 변화"라는 과제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유전공학이라는 도구를 손에 쥐게 됐다.

장차 유전자 조작으로 "포스트휴먼"같은 새로운 형태의 인간을 탄생시킬 날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포스트휴먼"문제는 조이가 지적한 것보다도 훨씬 더 근본적이고 무게가 실린 이슈다.

인간의 감정과 인식능력,어쩌면 수명과도 관련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인류가 맞닥뜨리지 못했던 사태,즉 인간성의 기술에의 종속 또는 조작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언젠가 우리의 인체가 마음대로 조작될 수 있는 "포스트휴먼 시대"가 도래하면 인간의 갈등 구조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아마 자유와 기술 사이에서의 갈등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은 어느 정도의 선천적인 불평등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왔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조직들은 대개 "결과"가 아닌 "기회"의 평등과 같은 개념들을 토대로 구성돼 왔다.

하지만 포스트휴먼시대에는 그럴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생물학적인 요소들조차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가 공공의 관심사가 되면 정치의 구도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도덕적인 부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은 분명히 첨단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가 맞이하게 되는 새로운 시대의 본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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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고성연 기자 amazingk@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