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일본을 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이지만 또 가장 먼 나라,가장 잘 알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알 수 없는 나라로 이야기들 한다.

가깝게도 혹은 멀게도 느껴지고 알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알 수 없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일본을 규정짓는 그렇게도 많은 책들이 끊임없이 팔려나가는 것 같다.

그런데 일본을 소개하고 파헤치는 그 많은 책들 중에 더러는 일본을 숫제 기이한 성벽을 지닌 집단 사이코 증세의 나라로 묘사하거나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은폐된 광기의 나라 혹은 영혼이 없는 이코노믹 애니멀의 국가로 그려내기도 한다.

개인은 없는 유교자본주의의 국가 주식회사로 묘사하고 있는 책도 있다.

그런 면들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라도 민족도 동전처럼 양면이 있게 마련이다.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정적인 측면만을 극대화시켜 놓고 보면 긍정적인 측면은 아예 가리워져 버리거나 본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여겨지기 쉽다.

일본 역시 수많은 부정적이고 어두운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배우고 받아들일 만한 긍정적인 측면 또한 많이 가진 나라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이 것만은 배웠으면 싶은 것 중의 하나가 문화와 예술에 대한 지극한 경념과 애호의 태도이다.

일본은 종종 문화 예술적인 측면에서 독창성이 부족하거나 다른 나라의 것을 잘 모방하는 나라로 알려지고 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문화나 예술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한 인식만은 잘 되어있다.

이름 없는 장인이 만든 공예품 하나에 대해서도 "오,스바라시이!(좋다! 멋있다!)"라는 감탄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건성으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장인의 정성을 인정하고 그 정신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그들에게 문화의 국적은 필요없는 듯 보인다.

야나기 무네요시 같은 근대 일본 최고의 미학자가 조선의 민예물에 그토록 매료돼 상찬해 마지않았던 것도 순수히 예의 정신을 기리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조선의 것이든 일본의 것이든 문제가 되지 않았던 셈이다.

이 예의 정신,특히 공예의 정신은 근대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산업현장과 연결돼 일본의 독특한 힘을 만들어 내는데 일조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문화예술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문화예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지극한 경념과 애호의 태도를 지니고 있다.

현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선의 민화나 목물 석물과 도자기들이 일본에 가 있다.

약탈하다시피 가져간 것들이 대부분일 테지만 어쨌든 일본은 우리 미술작품들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우리가 우리 것 소중한 줄 모르고 귀하게 여기지 않은 것들을 일본은 수집하고 아끼고 사랑했던 것이다.

일단 가져가고 나면 그들은 끔찍할 만큼 소중히 보관한다.

문헌을 정리하고 기록을 철저히 하여 자국화 해버린다.

철저히 아끼는 데다가 비교적 전화가 없어 고스란히 보관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미술사를 제대로 연구하고자 하면 일본 내의 소장품들을 무시하고서는 되지 않을 정도에 이른 것이다.

당장 고려 불화에 대한 제대로 된 논문 한 편을 쓰려해도 일본에 건너가 현물을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우리의 형편이다.

우리 문화,우리 미술을 다른 나라도 아닌 우리와 적대적이었던 일본에 가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도 보통 아이러니가 아니다.

일본에 가서 우리 문화재와 우리 예술품을 대할 때면 누구라도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미처 소중한 줄 모르고 소홀히 했던 것들이 다른 나라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심정은 실로 복잡 미묘하다.

뒤늦게 그 빛나는 가치를 알아보고 발을 굴러보아도 소용없는 일이다.

간혹 우리나라 기업 같은데서 경매를 통해 우리 예술품을 다시 사고자 했을 경우 입이 딱 벌어지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매겨지곤 한다.

실제로 조선시대 청화백자 하나를 다시 사 오기 위해서는 국산 자동차 수백대를 수출해도 될까 말까 할 정도인 것이다.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나 예술품을 가격으로 환산한다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액수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 문화예술품들에 의해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이다.

자기의 문화와 예술을 아끼고 사랑할 줄 모르는 민족은 영원히 정신적 식민 상태를 못 벗어날 것이다.

일본에서 배워야 할 것중 중요한 한 가지가 바로 문화사랑 예술사랑의 태도인 것이다.

kimbyu@ 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