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현대그룹에 대해 오너일가의 사재출연을 다양한 채널로 압박하고 있다.

시장이 납득할 만한 "성의표시"가 있어야 정부지원의 명분이 생기고 시장신뢰 회복도 기대할 수 있다는게 정부의 시각이다.

물론 정부에선 누구도 공식적으로 사재출연을 요구한 적은 없다.

그러나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청와대 등의 실무자들은 한결같이 사견임을 전제로 사재출연 외엔 대안이 없음을 강조한다.

정부가 강요하진 못해도 현대 스스로 알아서 해결책을 내놓길 기대한다는 얘기다.

이용근 금감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부른데 이어 28일에도 현대측 구조조정본부 인사를 만나 "성의표시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현대투신의 경영정상화 계획이 미덥지 않다는 뜻을 밝히고 ''시장은 참을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헌재 재경부장관은 사재출연을 일개 사무관의 아이디어라고 일축했지만 "현대투신 문제는 현대 스스로 현명하게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기호 경제수석도 유동성지원과 사재출연은 무관하다면서도 "현대그룹이 스스로 자구노력을 하지 않으면 현대투신에 대한 자금지원은 어렵다"고 밝혔다.

이들 "3이(李)"의 얘기를 종합하면 사재출연이란 말만 안했을 뿐 사실상 피할 수 없음을 우회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의 선 자구노력, 후 지원 원칙이 분명해졌다.

정부가 현대투신 문제를 사재출연이란 카드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데는 삼성의 선례를 의식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삼성이 삼성자동차 부실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삼성생명 보유주식 4백만주(2조8천억원)를 출연함으로써 해결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대가 사재출연을 거부할 경우 여러모로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다.

부실해진 현대투신을 방치할 수 없는데다 현대투신에 유동성을 지원할 경우 생길지 모를 대기업계열 금융회사에 대한 특혜시비가 불거질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주인(대주주)이 있는 금융회사의 부실은 주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정부의 금융구조조정 원칙을 감안할때 사재출연은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금감위 관계자는 "오너가 사재까지 턴다고 하면 정부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삼성은 스스로 사재출연을 해법으로 가져 왔는데 현대는 다소 안이하다는 느낌도 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현대투신의 지원요청을 마냥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투신은 부실한 국민투신과 한남투신을 떠맡아 정부 부담을 덜어준 "공로"가 있다.

한투 대투에 공적자금을 넣어 정상화시키면서 현대투신을 방치해선 투신문제에서 헤어날수 없다.

그러나 오너일가가 사재를 출연해도 현대투신에 2조원선의 유동성 지원으로 문제가 해결될지는 미지수란 지적이다.

정부는 연계콜 3조2천억원과 누적결손 1조2천억원을 해소할 현대측의 근본적인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 대한 현대(옛 국민)투신 등 3투신의 부실문제가 해소돼야 비로소 증시도 투신부담을 털수 있다는 것이다.

오형규 기자 ohk@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