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 소설가 >

정치인은 요즘 "동네북"이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못배운 사람이나 없는 자들로부터 많이 배운 사람이나 많이 있는 자들에 이르기까지 국회의원이라면 너나없이 못믿을 사람이요, 저질이며, 부패한 자라고 불신하고 매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놈이 그놈"이란 말이 유행한 적은 있었으나 모멸의 강도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

속으로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욕을 해준 금배지 단 분이 나타나면 이내 찔끔 입 다물고 예를 갖추었는데, 요즘은 그나마도 없이 아예 드러내 놓고 모멸의 표정을 짓는다.

가령 총선연대가 벌이는 "낙선운동" 같은 것도 그 당위성과 상관없이 대상자의 입장에선 가장 극단적이고 공개적인 모멸이다.

마치 국회의원이나 후보자들을 싸잡아 매도하므로서 은연중 우리가 더 우월하다는 식으로 국회의원 못해본 한풀이라도 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누워 침뱉기다.

국회의원을 싸잡아 매도한다고 해서 유권자인 우리들 자신에게 원천적으로 면죄부가 주어지는건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못돼 먹었다면 우리도 못돼 먹었거나, 눈 뜬 봉사였거나 했을 것이다.

그들을 뽑아준 것도 우리들의 손이고 그들을 비리에 내몬 것도 우리들의 잘못된 이기주의적 욕망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고무신 한 켤레에 점심 한끼에, 내 고향 내 집안 사람이라는 그 지역주의 혈연주의에, 나만의 기득권을 위한 계산된 이기주의에 소중한 우리의 한표를 팔아먹은 일이 어디 한두번이었던가.

수십억원씩 꿀꺽 먹은 정치인이, 독재에 기생하며 국민을 마구 억압하는데 앞장선 정치인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나만 먹은게 아니오, 우리 고향을 죽이는 표적사정이요 어쩌고 하면 옳거니 그렇고 말고, 온정주의 이기주의 지역주의 부패주의를 비빔밥으로 한 밥그릇에 비벼서 바친 것이 누구였던가.

바로 우리들 자신이 아니었던가.

한마디로 말해, 뼈아픈 자기반성과 성찰이 없다면 개혁도 역사발전도 없다.

비리와 함량미달의 후보자들만 탓할 것이 아니라 먼저 겸허하게 온갖 술수에 물든 우리의 "검은 손" "검은 양심" "눈 뜬 봉사"를 심판해야 한다.

명분과 표심이 다르다는 이중적인 우리의 관습을 뼈아픈 성찰로서 박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으로 모처럼 정치 냉소주의에서 벗어난 이번 선거도 결과는 과거의 재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선거일이다.

세계는 가속도로 변하고 있고, 통일의 열망으로 남북정상이 이마를 맞댈 날 멀지 않았으며, 새 시대의 새로운 봄꽃들이 다투어 피고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늘을 역사적 주체로서의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의 날로 삼고자 한다.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단지 입후보자들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내 자신, 우리 자신에 대한 고통스럽고도 미래지향적인 심판이 되도록 할 때, 우리는 아마 시민혁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새 시대의 한 디딤돌을 낳게 될 것이다.

정보는 널려 있다.

게으르지 않게 널린 정보들을 모아보고, 과거의 "검은 손"이 아니라 나부터 온갖 잘못된 선거관행에서 벗어난 새로운 "흰 손"이 되도록 바꿔 투표장으로 즐겁게 가자.

그게 역사의 주체로 우리들 자신을 힘있게 세우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