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 없이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만큼 혼탁한 게 요즘 세태다.

세태의 길잡이를 자처하는 내노라하는 이론가들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론은 딱딱하다.

반면 우화는 흥미있고 알아듣기 쉽다.

누가 처음 말했는지 불분명한 얘기 하나를 소개하기로 한다.

요즘 헷갈리는 경제정책이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판가름하는데 도움이 됨직하다.

사회주의: 당신에게 두 마리 암소가 있다치자. 한 마리를 이웃에게 주고 한 마리만 가져라.

공산주의: 당신이 가진 두 마리 암소를 모두 국가에 바쳐라. 국가가 우유를 좀 나눠 줄 수 있다.

나치주의: 당신이 두 마리 암소를 가졌다면 정부는 당신을 총살하고 모두 빼앗는다.

무정부주의: 당신은 두 마리 암소를 그냥 가지고, 정부 앞잡이를 죽이고 남의 소까지 훔친다.

자본주의: 당신에게 두 마리 암소가 있다면 시장에 암소 한 마리를 내다팔고 수소 한 마리를 사 온다.

새끼를 낳아 두고두고 이익을 취한다.

우화는 언뜻 알아듣기는 쉽지만 이론의 정치한 부분까지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단점이 있다.

그러나 생산의 효율성과 분배의 정의를 어떻게 배합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되새김해 볼 만한 우화라고 여겨진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픈 백성에게는 두 마리 암소를 가진 이웃이면 곱상일 수 없다.

이런 국민정서의 계몽없이 그대로 영합하는 정책을 펴서는 진정한 시장경제가 발전할 수도 없고, 21세기 무한경쟁의 세계경제에서 한국의 생존 번영이 보장될 수도 없다.

요즘 정부가 말하는 "생산적 분배"가 암소 주인에게도 열심히 일해 많은 우유를 사회에 공급하도록 유인하는 그 무엇을 함축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채찍과 당근이 함께 있어야 암소 주인도 배 아픈 이웃도 다스릴 수 있다.

40여년전 인도는 한국보다 훨씬 앞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행하는 등 발전 전망이 밝은 나라였다.

그러던 인도가 1인당 국내총생산이 한국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종교적 금기가 아니었다면 도살돼 식용으로 쓰였을 소들이 무리를 지어 느릿느릿 배회해 교통흐름이 차단되곤 한다.

고질적 카스트제와 관료주의가 체념과 부패를 확산시켜 국민의 경제 마인드를 질식시킨다.

그런 인도도 근래에는 사회주의의 규제를 풀고 외국자본의 국내시장 진출을 허용하는 등 시장경제의 새 바람을 맞아 들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민경제발전을 위해 외국자본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국민감정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영국은 왠만한 제조업중 자국민 손에 남아 있는 게 드물다.

런던 금융가에도 미국, 독일, 스위스 등 외국계로 넘어간 회사들이 즐비하다.

이러던 영국인에게 자존심을 세우는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독일의 전통적 제조업 기업 "만네스만"을 영국 정보통신기업 "보다폰"이 흡수합병하는데 성공했다.

런던의 대중지들은 "드디어 독일 굴복하다"라고 대서특필했고, 독일의 언론은 시큰둥했다.

그동안 수많은 영국기업들이 이미 독일 자본의 지배하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 애국심이 국민경제이익의 올바른 저울대가 아니다.

국민경제의 득실을 냉철히 따지는 머리로 뜨거운 가슴의 애국심을 식혀야 한다.

국내시장의 개발이후 외국인 소유로 넘어간 토지가 여의도 면적의 몇배이고, 국내 굴지의 기업들도 외국자본의 지배하에 들어간다고 대중매체들이 호들갑이다.

J은행, S전자, O맥주 등에 이어 D자동차도 외국자본에 넘어가게 된다고 한다.

외국자본의 국내기업인수에 대하여 이렇게 머리를 정돈해보면 어떨까.

상책: 재무상태가 건전하고 수익성이 높아 외국자본이 군침을 삼키지만 주식시세가 워낙 높아 인수에 엄두를 못내는 기업을 많이 가지는 것.

하책: 재무상태가 불건전하고 수익전망이 불량해 주가는 헐값이지만 외국자본이 인수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기업들을 가지는 것.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외국자본의 인수관심대상이 될만큼 높은 주가의 건실한 기업들을 많이 육성하는 것이지, 폭락 주가의 불량기업을 양산해 그들의 관심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다.

장벽을 높여 외국자본의 국내진출을 차단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무엇이 우리 기업인지 판단하는 기준을 글로발시대에 걸맞게 세워야 한다.

대주주 국적이 무엇이든 한국 노동자에 일자리를 주고, 법인소득세 등을 한국 정부에 납부하는 기업이면 한국기업이다.

해외에서 외국경제에 기여가 큰 한국국적의 기업보다 외국기업이 한국경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크면 그것이 우리 기업이다.

우리도 해외에서 외국기업의 인수 합병에 나설 힘을 키우면 된다.

애국심의 뜨거운 열정 때문에 냉철한 국민경제의 이익계산이 틀려질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