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옥(67) 코리아나화장품 회장은 지난해 연말 눈코 뜰새없이 바빴다.

코스닥 등록 등 회사일 때문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이삿짐 꾸리는 일도
한몫 했다.

1월초 있었던 유회장 집 이사는 여느 집과 사뭇 달랐다.

대개 이삿짐 싸는 일은 "안사람"의 몫이다.

그러나 유회장은 직접 챙겨야했다.

화장용구 종 조각품 등 수천점의 애장품들이 집안 어디에 숨어 있는지를
그만이 알고 있어서다.

30여년전부터 시작된 유회장의 컬렉션은 취미인 동시에 직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70년대초 동아제약 재직시 제약관련 골동품 수집에 몰두했다.

박봉을 쪼개 약 저울, 약장, 약틀 등을 구입했다.

라미화장품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서화수집에 재미를 붙였다.

그러나 당시 그림값이 뛰면서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전통 화장
용구 등 비교적 값싼 민예품에 눈을 돌렸다.

종과 여체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라미벨" 화장품브랜드가 크게 히트하면서
종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때 쯤이었다.

중국 스위스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종이 1천점은 족히 된다.

그러나 가장 애착이 가는 쪽은 역시 전통 화장용구들이다.

상감청자 국화문 유병(기름병), 상감청자 학문 분합, 청화백자 난초문 사각
분수기(물병), 청화백자 격자문 분갑 등 "국보급"들이 수두룩하다.

최근에는 화장이 지워지지 않도록 새색시의 눈물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백자 눈물잔까지 구했다.

유 회장은 요즘도 주말이면 인사동, 청계천, 장한평 등을 기웃거린다.

유 회장은 "골동품을 사느라 생활비를 제대로 못대 줘 아내한테 구박도 많이
받았다"며 "그러나 희귀품을 얻었을 때의 기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고 말했다.

유 회장이 이처럼 전통민예품 수집에 열을 올리는 것은 화장품회사 최고
경영자로서 심미안을 키워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
가겠다는 기업가정신 때문이다.

올 봄 출시될 최고급 "골드콤팩트"의 디자인도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
시대 구리거울(동경)인 "동제양각쌍어문원형경"에 새겨진 물고기에서 따왔다.

유 회장에게 있어 소장품은 디자인 등 제품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무궁무진한
보고나 다름없다.

앞으로는 집 회사 등에 흩어져 있는 소장품들을 한데 모아 여러사람들이
같이 즐길 수 있도록 개인박물관을 지을 생각이다.

현재 부지를 물색중이다.

유 회장은 "용돈을 쪼개 샀지만 더이상 개인의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며
"다같이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김수찬 기자 ksc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