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 랩 연구 컨소시엄'' 기초과학서 출발 ]

최근 미국 MIT 미디어랩에서 출간한 "생각하는 사물"(When things start to
think)에서 거센펠드 교수는 "사람들이 연구의 내용은 이해하지 못하면서
전문적인 새로운 단어만을 열거하기 좋아한다"고 꼬집었다.

요즘 유행하는 첨단 분야의 연구 주제들이 사실은 기존에 연구되고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름만 근사하게 바꿔 새롭게 포장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곳은 멀티미디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연구소로 인정받고 있지만
"멀티미디어 연구원"은 없다.

멀티미디어는 추상적인 단어로 구체적인 연구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멀티미디어 연구는 그 분야가 매우 광범위해서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미디어에 대한 연구가 먼저 이뤄져야 하며 이들 미디어가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멀티미디어는 구체적으로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멀티미디어라는 코끼리는 그 전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디어랩의 연구 프로젝트는 서로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이 연구소는 멀티미디어 연구를 위해 3개의 대형 컨소시엄을 운영한다.

"디지털 생활" "미래의 뉴스" "생각하는 사물" 등이 그것으로 일반적인
기술 연구팀과는 사뭇 다르다.

또 방송, 전자 시장, 저가 PC, 미래의 장난감 등 7개의 특별 연구 그룹과
24개의 단위 연구 그룹이 만들어져 있다.

이들 컨소시엄과 연구 그룹은 서로 독립된 연구팀이 아니라 단위 연구
그룹들이 컨소시엄에 단독 또는 중복적으로 소속돼 있다.

미디어랩이 이러한 연구 조직을 갖추게 된 것은 프로젝트별로 연구비 제공자
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연구비 제공자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먼저 커다란 주제아래 관련되는 기업의 지원을 한데 모아 컨소시엄을 구성
한다.

이 주제와 관련되는 단위 연구팀을 컨소시엄 안으로 끌어들여 연구를 지원
한다.

따라서 하나의 단위 연구 그룹은 두개 이상의 컨소시엄에 포함된다.

특히 하나의 주제에 대한 연구 결과를 활용 분야에 따라 여러 형태의 기술로
개발하고 있다.

이 미디어랩의 연구 방식은 국내 연구소의 방식과 상당히 차이난다.

미디어랩의 연구 과제는 대부분 기초 과학이다.

인간의 인지 감각 정보처리 감성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한다.

기초과학과 인지과학 연구에서 인간과 기계(컴퓨터)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이 개념과 관련된 기술을 다시 기초과학이나 기존 기술에서 찾아내 자체
기술로 발전시킨다.

미디어랩을 방문하는 국내 과학자들은 기술의 겉모습만 보고 기술수준이
우리와 달라 국내 기업에서 제품화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종종 내린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연구소의 기술 내용과 개발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인간과
컴퓨터와의 관계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히 국내 멀티미디어 연구도 우리만의 의식구조와 가치관을 바탕으로
인간과 기계간의 관계를 먼저 정의한뒤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단 이 연구는 엔지니어가 아닌 사용자와 인지 과학자의 관점에서 시작돼야
한다.

미디어랩의 주축을 이루는 연구원들이 교육학 물리학 작곡 컴퓨터 심리학
언어학 등 다양한 학문을 전공한 전문가들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기초 학문과 인간의 특성을 무시한 기술중심의 멀티미디어 연구개발은
제대로 된 성과를 올릴 수 없다는게 미디어랩이 주는 교훈이다.

이구형 < LG전자 디자인연구소 수석연구원 khleephd@lge.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