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형 < 서울대 교수 / 공법학 >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으로 정치권에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공천 부적격자 명단을 공표,기성정당들에 압력을 가하고 그에
불응할 경우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기성정치권이 독점해 왔던 정치인 배출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희망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각당은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선별적으로 이용하려는 듯하다.

선거법 등 정치개혁 입법이 각당의 당리당략으로 또다시 늑장을 부리고
있다.

부적격 정치인 불매운동이라는 일종의 정치적 소비자운동으로 전개된 낙천.
낙선운동이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정치권의 "그들만을
위한, 그들만에 의한, 그들만의 정치"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
이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낙후된 부분이자 사회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기혁신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었던 정치의 개혁을 이제 더 이상은 기성정치인들에게
맡길 수 없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치권의 작태에 대한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고 정치개혁
에 대한 일말의 기대조차 버려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 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인식은 시민단체들의 대대적 도전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파행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국회의 모습을 통해 재확인되고 있다.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그 절실함으로 따지자면 통일에 대한 열망
못지 않다.

오죽하면 살생부같은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공표하는, 어떻게 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 갈채를 보내게 되었을까.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은 시민선거혁명의 성공여부를 판가름해주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우리 의회정치의 현실은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표한다는 대의제의
원리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파당화의 길을 걸었다.

국회의원은 선거인 개개인이나 선거인단 또는 국민으로부터 지시나 명령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전체국민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무기속 위임의 원리가 그런 현실을 법논리적으로 뒷받침해
주었다.

선거는 그나마 대표하는 국회의원과 대표되어지는 국민간 연계를 회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계기였지만, 그 선거마저도 황제경영식 지배구조를 지닌
정당의 공천 및 선거전략을 통해 정치적 심판이라는 본래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심판모델로서의 선거는 비현실이고 현실은 철옹성과 같은 기성정치인들의
독과점 구조를 토대로 한 성공적 의석확보기회로서의 선거였다.

열심히 일한 의원들은 낙선하고 정당보스에 충성하고 민의와는 동떨어진
계파정치에 몰두한 의원들은 "해가 지지 않는" 영광을 계속 누릴 수 있었다.

한국에서 대의제의 근육은 경직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 마당에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을 둘러싸고 다시금 적법성 시비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은 대표하는 국회의원과 대표되어지는 국민간의
잃어버린 연계( missing link )를 되찾기 위한 정치적 실천이다.

이것을 이미 상당부분 사회적 정당성을 상실한 개정대상으로 검토되고 있는
사전선거운동 규제조항으로 재단하는 것이 옳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당초 김대중 대통령은 시민단체들의 법위반행위를 양해함으로써 이들의
에너지와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포용하고자 했다.

그러다 자민련과의 공조가 위태로워지자 다시금 법적 제재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자민련은 갑자기 법치주의를 수호하려는 자유의 투사로 변신해 음모론을
제기하더니만, 결국은 명단공표에 대한 최대 피해자로서의 피해의식과 지역
감정을 교묘히 결합시켜 유권자들의 몽매한 반발심을 이용하려는 또 다른
음모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대의제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고자 하는 시민단체들의 희생적 실천과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 지지로 조성된 한국민주주의의 기회가 정치적으로
이리저리 요리되고 있는 모습, 이것이 우리가 아무리 애써 부인하려 해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정치의 현주소이자 자화상이다.

물론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이 일종의 시민불복종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상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긴장이 없을 수 없다.

그런 행위를 선례로 삼아 일상화하거나 정치적 해법으로 양성화하는 일
또한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시민단체들의 사회적 쟁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교활한 행태다.

시민단체들이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배경으로 제기한 이의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기성정치의 기도야말로 우리 모두를 암울한 공멸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일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위법으로 유권해석한 총선후보자 정보공개운동보다
도 오히려 한걸음 더 나아간 낙천.낙선운동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법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견해를 표명한 것은 아무래도 적절치 못했다.

자민련에 음모론을 제기할 빌미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정의 최고책임자로
서 법질서를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해 나가야 할 입장에서 그리 신중한
태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제 정치권이나 시민단체나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넌 셈이다.

이제는 정치개혁이든 물갈이든 국민이 만족하는 수준의 개혁을 이루지
못한다면 누구라도 파문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뜻에서 위기극복을 위한 개혁작업에 하루가, 단 몇시간이 아쉬운 판에
국회가 다시 정치개혁입법을 무산시키고 회기를 연장한 것은 진정으로 개탄해
마지않을 일이다.

깨달음과 그 실천을 위해 얼마나 더 지탄과 불신을 받아야 하는가.

< joonh@snu.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