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플랫 < 휴렛팩커드(HP) 회장 >

전력(에너지)산업은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생필품을 공급하는 핵심산업이다.

모든 기업과 개인들이 이 에너지에 의존해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전력산업덕에 토스터나 컴퓨터 세탁기 등 어떤 전자제품도 걱정없이 쓸 수
있다.

컴퓨터업체들이 따로 발전소를 세우지 않고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도 다
전력산업 덕택이다.

컴퓨터업체들이 지향하는 것도 바로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걱정없이 컴퓨터
서비스를 받게 하는 것이다.

컴퓨터메이커들은 인터넷이나 자체 네트워크를 통해 어떤 정보든지 주고
받을 수 있게 할 수 있다.

컴퓨터 서비스는 에너지처럼 어디서나 받을 수 있는 생필품이 돼야 한다.

이런 면에서 전력산업과 컴퓨터산업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양 업종이 유례없는 경쟁상황에 직면한 것도 비슷하다.

두 업종에 종사하는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개발을 통해 고객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다.

쥐가 미로속에 있는 치즈를 찾아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여기서 치즈는 우리가 필요로 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들, 예를 들어 행복한
가정이나 건강, 평안한 마음 등을 가리킨다.

3~4마리의 쥐가 이 게임에 참가하며 이중 누구는 실패하고 누구는 결국
미로를 풀고 치즈를 차지하게 된다.

이것이 얘기하려는 주제다.

컴퓨터산업이나 전력산업이 전에 없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으며 반드시
성공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몇년전만 해도 컴퓨터산업에서의 변화속도가 절정에 달했다고
생각했다.

점차 변화가 줄다 업계가 안정적 구도를 찾게 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는 큰 오산이었다.

아직도 변화는 예상치 못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진실이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경쟁의 법칙과 규제완화, 인터넷 속도의 증가, 고객의 기대수준은
끊임없이 한단계씩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1980년대 중반을 생각해보자.

당시 대부분의 고객들은 컴퓨터에 관한 한 모든 서비스를 한 공급업체에
의존했었다.

컴퓨터업체라면 하드웨어에서부터 소프트웨어, 사후관리까지 패키지로
공급하는 체제가 지배적이었다.

공급업체는 수직적인 조직구조를 갖고 컴퓨터에 관한 토털서비스를
제공했다.

분명 이런 체제에는 편리한 점이 있었다.

당신이 컴퓨터 서비스 공급자 입장이라고 치자.

당신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일괄 제공하는 입장이고
소비자는 이를 사야 하기 때문에 설사 한 부분이 좀 약하더라도 대충
넘어갈 수 있었다.

다른 부분에서 이를 보충하도록 계약하면 됐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여기저기서 계약을 체결할 필요가 없는 이점이 있긴
했지만 이런 시장은 철저히 공급자 위주였다.

휴렛팩커드(HP)는 그런 시장에서 강자가 아니었으며 결코 토털서비스로는
승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HP는 각 부분에서 표준을 정하는 방식에 승부를 걸었다.

고객들은 하드웨어는 하드웨어대로, 소프트웨어는 소프트웨어대로 따로 살
수 있고 우리는 이를 통합 관리해주는 사업방식을 밀고 나갔다.

이런 경쟁체제에서는 수많은 공급자들이 나서게 된다.

진정으로 세계 최고의 제품을 공급하는 공급자가 생기는가 하면 어떤
기업은 경쟁에서 밀려나 사라지기도 했다.

그 결과 소비자가 세계 최고의 제품을 가장 싼 값에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공급자 위주에서 소비자 위주로 시장 메커니즘이 바뀐 것이다.

그러나 경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더 치열해지고 있다.

이제는 기업들이 한 제품, 한 종목에만 매달린다.

여러서비스를 고려할 틈이 없다.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

소비자들이 값싸고 질좋은 에너지공급자를 선택할수 있는 시대가 됐듯
컴퓨터서비스시장에서도 똑같은 경쟁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리더십의 붕괴와 경쟁법칙의 재구축을 가져오게
된다.

1980년대 중반에는 우리가 새로운 스탠더드 도입방식으로 리더십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인터넷 기업들이 우리에게 리더십을 내놓도록 강요하고
있다.

또한 급격한 탈규제화의 물결도 시장재편을 요구하고 있다.

신문과 통신의 머리기사는 모두 어디서 어떤 규제완화책을 내놨다는
것들이다.

전력산업에 대한 진입규제가 풀리면서 캘리포니아주에만 수백개의 업체들이
난립,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1~2년 후 10여개 업체만 남았고 리더십의 역사가 다시 써졌다.

따라서 이제 어느 시장이든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소비자 중심"의 시장이
형성됐다는 점을 간파해야 한다.

이는 인터넷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 정리=박수진 기자 parksj@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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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최근 루 플랫 휴렛팩커드(HP) 회장이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린 에디슨전력연구소의 연례회의에서 행한 연설을 요약한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