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올 첫 국무회의.

회의를 주재하던 김대중 대통령은 "일부 재벌들이 다시 양적인 확장을
하려는 것은 매우 걱정스런 일"이라며 국무위원들에게 "관심을 갖고 대처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통령의 이런 뜻을 전해들은 재계는 당혹해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청와대 회의에서 구조조정 성과를 칭찬하며 새해부턴
기업들을 격려하는 정책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얼마되지 않아 정부가
계속 기업경영에 간섭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수 있는 언급이 나왔기 때문
이다.

재계는 경제위기 이후 강도높은 구조조정 작업을 벌여왔다.

주요 기업들은 자구노력과 외자유치로 부채비율을 2백%이하로 줄이도록 한
정부 정책에 호응했다.

사업을 핵심업종 중심으로 재편했으며 사외이사를 선임하는등 경영투명성도
높였다.

정부는 재무상태에서부터 사업범위, 기업지배구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개별기업 경영에 관여했다.

이런 정부 정책은 물론 고속성장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들을 해소하고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는데 기여했다.

재계는 비상상황 극복을 위해 정부 간섭을 필요악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21세기까지 이같은 구태의연이 이어져서는 안된다는게 기업인은
물론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국내 1백대기업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최근 설문
조사한 결과 기업 구조조정 최대 걸림돌로 "정부의 지나친 간섭"을 꼽은 것은
경영인들의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정부와 기업간 관계의 재정립, 나아가 정부 자체의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거대 정부에서 고효율.저생산 정부로, 규제에서 상생으로"

기업인들이 바라는 21세기 정부상이다.

정부와 기업간 관계의 재정립은 정부 자체의 개혁을 전제로 해야 한다.

윤순봉 삼성경제연구소 이사는 ""정부가 하는 일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정부가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정부 재창조"
(Reinventing Government)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혁신정부로의 변신만이 정부와 기업간 관계를 생산적으로 바꿀수 있다는
말이다.

혁신정부는 "민간부문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고 개입 절차를 투명화한
정부"(신중섭 강원대교수)다.

다른 경제주체위에 군림해 감독과 규제를 하는게 아니라 협조와 상생의
이념아래 국민과함께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뛴다.

정부는 룰 메이커(Rule Maker.규칙제정자)와 그 감시자 역할에 그친다.

심판 역할에 만족하지 직접 경기에 뛰어들진 않는다.

21세기형 정부는 또 "사유재산권을 존중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정부"(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경영 간섭이 아니라 비전을 세우고 국가위기관리
체제와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있다.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 시장을 개혁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만들고
정보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힘써야 한다.

미국 연방정부가 지난 93년부터 추진중인 "국가정보 인프라"(NII),
네덜란드의 "퍼블릭 카운터 2000"계획 등은 그 대표적 사례다.

기업관련 시스템은 다양성과 탄력성 존중 원칙아래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

기업들도 사고를 바꿔야 한다.

일부 기업들은 난관에 부딪힐 경우 정부에 의지했다.

정부 간섭에 반대하면서도 필요할때는 도움을 청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정부로부터 독립해 자립경영을 이루려는 각오와 의지가 요구된다.

최승노 자유기업센터 기업연구실장은 "정부주도형 경제시스템을 시장지향형
경제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최대 과제"라고 말한다.

관료든 정치인이든 기업인 스스로든 이젠 "정부는 만능"이라는 사고를
버려야 할 때다.

< 강현철 기자 hckang@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