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구인의 희망과 축복속에 활짝 열린 2000년.

인류가 그토록 염원하던 이상향의 세계 유토피아는 새 세기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그리스어의 "없는(ou-)"과 "장소(toppos)"두 단어를 결합한 말인 유토피아는
현실적으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뜻이다.

하지만 현실의 고단함과 절망은 인간으로 하여금 늘 이상향을 갈구하도록
만들었다.

사상가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나서는 인류의 긴 여행은 새로운 세기에도
쉼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상의 땅을 향한 인간의 꿈은 플라톤의 "국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에게 국가는 그 자체로서 이상(idea)이다.

이성과 지혜를 갖춘 머리, 용기있는 가슴, 절제된 손과 발, 정의로운 마음이
조화를 이룬 이상적인 인간이 국가의 형태로 확장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철인이 이끄는 국가는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삶을 영위할수 있는
공동생활체로서 기능할 것이라고 설파했다.

정치가이자 인문주의자였던 영국의 토머스 모어는 공상소설 "유토피아"
(1516)에서 이상향의 전범을 내놓았다.

"모든 사적인 생산수단을 없애버린다면 인간끼리의 착취와 대립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모어는 단언한다.

그가 그려보이는 섬나라 유토피아의 모습은 현대인들에게 환상 그 자체다.

한가지씩 기술을 가진 모든 시민들은 하루 6시간 일하고 8시간 잠을 즐긴다.

생산과 분배는 모두 공동으로 이뤄진다.

사치와는 거리가 먼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이지만 인간의 냄새가 물씬 나는
풍경이 유토피아에서 펼쳐진다.

16세기 모어의 유토피아 사상은 17세기 들어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
베이컨의 ''뉴 아틀란티스'' 등과 같은 이상향을 낳았다.

학자들은 이 당시의 유토피아는 중세적인 사회질서가 근세 질서로 이행해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한다.

동시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근세 과학기술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동경의 결과이기도 하다.

현대 과학과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새로운 유토피아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은 "기계적인 기술에 의존하던 산업화시대를
거쳐 인류는 지적 기술에 기반을 둔 정보화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후기산업사회로의 성공적인 진입은 과학적 지식을 활용하는 하이테크
사회를 보장할 것이라고 낙관적인 미래상을 제시한다.

컴퓨터 네트워크 바이오기술 등이 과거 인류가 꿈꾸지 못하던 새로운
유토피아건설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신속한 전파가
미래 지구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라면서 "과학지식이 윤리 교육 정치 등과
균형을 이루며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내다본다.

그는 대량살상무기와 지구환경 오염이라는 두가지 큰 난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인간이 이를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이상향을 제시한다.

프랑스의 문화비평가 자크 아탈리는 "19세기가 자유의 세기였고 20세기가
평등의 세기라면 21세기는 박애의 세기가 될수 있을 것"이라고 다가올
유토피아의 성격을 규정한다.

그가 묘사하는 미래 이상향의 일부는 상상만해도 유쾌하다.

문명화된 도시에서 마치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는 미래인들은 1년중
1백일은 일, 1백일은 연구, 또 다른 1백일은 여행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여가를 즐긴다.

실업은 더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보편적인 민주주의의 확산은 누구든지 출신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투표권을 갖게된다.

조직은 수직적인 상하관계를 벗어나 하나의 네트워크로 다시 짜여진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시야를 보다 넓게 가지라고 주문한다.

"지구밖 우주공간에서 인간이 정상적인 생활을 누리는 제4의 혁명이 미래에
일어난다"는 것이 토플러의 예측이다.

지구촌 수준을 뛰어넘는 장대한 스케일의 유토피아가 펼쳐지리라는
설명이다.

그는 유전공학을 비롯한 과학의 진보는 지구상에서 기아를 몰아낼 것이며
부의 개념도 새롭게 세워지는 세상이 오리라고 전망한다.

중세시대의 문예부흥운동인 르네상스가 미래에 다시 힘을 얻어 이상향을
주도할 것이라는 미국의 미래학자 제럴드 셀런트의 주장도 관심을 끌고 있다.

산업시대의 논리가 막을 내리고 문화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예술 개성 혁신 등을 중시하는 이른바 글로벌르네상스는 미래에 다가올
새로운 유토피아를 이끄는 엔진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 박해영 기자 bono@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