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임스 챔피 미국 페로 시스템스 회장 인터뷰 ]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하고 있는 21세기에도 리엔지니어링은 기업들의
생존을 위한 유용한 처방이 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기업들 사이에 "리엔지니어링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챔피 미국 페로 시스템즈사 회장은 2000년대에도 기업들은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효율화하는데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21세기는 사이버 시장의 출현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시장의 완벽한
지배자로 군림하게 됐다고 전제, 기업들 간에 무한 경쟁 보다는 협력과
경쟁을 조화시키는 "코피티션(co-opetition)"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90년대초 위기에 빠져있던 미국 기업들에 리엔지니어링 돌풍을 일으키며
재기의 발판을 딛게 했던 장본인 챔피 회장을 만나 경영문제와 관련, 기업들
이 21세기에 관심을 둬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를 들었다.


-귀하가 주창했던 "리엔지니어링"은 세계적 화제를 일으켰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리엔지니어링이 기업의 구조 조정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
못된다는 비판도 있다.

최악의 위기 상황을 벗어나는데는 군살빼기 같은 비상 조치가 필요하겠지만
미래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건 리엔지니어링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내가 주창한 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BPR)은 말 그대로 비즈니스의
프로세스를 효율적으로 구조 조정하자는 것이지 단지 비용이나 절감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BPR가 지향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시간 효율의 향상, 곧 시간을 아끼자는 것이고 둘째는 품질
개선이다"

-BPR는 90년대 미국 기업이 직면했던 경영 위기의 산물이었다.

정보통신 혁명 등으로 경영 환경이 크게 달라진 오늘날에도 BPR는 기업들에
여전히 유효한가.

"물론이다.

오히려 요즘과 같은 상황이 더욱 BPR를 필요로 한다.

우선 전자 상거래의 출현으로 기존의 기업 구조에 일대 변혁이 불가피
해졌다.

디지털 시장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팔려면 물류 시스템을 혁신해야만
한다.

그 작업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BPR이다.

국제적으로 활발해지고 있는 기업간 인수 합병(M&A)도 BPR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두 개의 이질적인 기업이 한 회사로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BPR가
뒤따라야 할 것임은 불문가지다"

-한국경제신문은 새 천년의 주요 트렌드로서 국가의 글로벌화, 기업의
디지털화, 개인의 정보화 현상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을 필두로 한 정보통신 혁명은 기업 뿐 아니라 세계 경제 전반을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하고 있다.

기업들이 이런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가.

"기업들은 먼저 디지털화가 함축하고 있는 경제적 의미를 새겨봐야 한다.

디지털화가 세계 경제에 안겨 준 가장 큰 변화는 소비자들을 시장의 완벽한
지배자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인터넷 경매회사인 e베이,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 닷 컴 등의 덕분에
소비자들은 간단한 컴퓨터 조작 만으로 시장을 이리 저리 주무를 수 있게
됐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게 분명하다.

기업들이 이런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요자층을 넓히는 작업부터
서둘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쟁 기업들과도 과감하게 손을 잡아야 할 것이다.

업종별로 기업들마다 "나의 고객"이 아닌 "우리의 고객"을 확보하는 일이
선결 과제로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시장 저변을 넓히고 난 뒤 그 안에서 점유율 경쟁을 벌이는 것이
순서다"

-기업간 경쟁 속의 협력, 이른바 "코피티션(co-opetition)"을 말하는 것
같다.

과거에도 적지 않은 기업들 사이에 "코피티션"이 시도된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마이크로 소프트사와 리얼네트워크사가 최근 추진했던 인터넷 서비스 분야의
제휴도 실패로 귀결됐다.

"코피티션"은 책 속에서나 통하는 가설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코피티션이 실패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파트너 기업간 힘의 균형이 한 쪽으로 기울어질 때이고, 둘째는
제휴 동기가 약화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비즈니스가 활발해질수록 코피티션의 필요성도
그에 비례해 높아질 것이다.

온라인 증권회사인 찰스 슈왑은 최근 경쟁 증권사들의 뮤추얼 펀드도
취급키로 결단을 내렸다.

경쟁사의 상품을 팔아서라도 고객들이 다른 쪽으로 한 눈을 팔지 못하게끔
붙들어 두는 것이 궁극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코피티션은 앞으로 갈수록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글로벌화와 정보화는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먼저 말해 둘 것이 있다.

나는 글로벌 경제나 정보화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모두 일부 논객들이 지어낸 허구적 신화일 뿐이다.

우선 글로벌화라는 것의 허구에 대해 최근 나와 우리 가족이 경험했던 바를
들어 보겠다.

얼마전 나와 아내는 한 유럽 잡지에서 쓸만한 가구에 대한 광고를 보았다.

그 가구를 사기로 마음 먹고 잡지 광고에 나온 대로 해당 회사의 인터넷
웹 사이트를 찾아 들어갔다.

그 웹 사이트는 가구 회사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한껏 과시하고 있었다.

미국내 지사의 연락처도 표시돼 있었다.

우리는 반가운 마음으로 미국 지사에 연락했다.

그러나 이 회사의 "글로벌화"는 여기에서 멈추고 말았다.

가구를 구입하겠다는 우리의 얘기에 대한 미국 지사측 대답은 "유럽에서
운송해 와야 하니 몇 달을 기다려야 하며, 거액의 운송비를 별도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글로벌 경제라는 것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물류 문제가 해결돼야만 한다.

이런 실질적인 문제가 미해결로 남아 있는 한 글로벌 경제는 빚좋은 개살구
일 뿐이다"

-글로벌화는 그렇다 치고, 어째서 정보화도 허구적 개념인가.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우리가 지금 맞이하고 있는 것은 "물류의 시대(age of logistics)"에 더
가깝다.

정보화는 물류 혁명을 돕는 한 요소에 불과하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이런 주장에 대해 "정보화 혁명이나 물류 혁명이나
그게 그거지, 무슨 말 장난이냐"고 힐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둘은 분명히 다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의 정보통신(IT) 혁명에 대한 자아도취와
광적인 집착으로 인해 기업들이 정작 서둘러야 할 물류 인프라의 구축 작업이
도외시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에는 도로와 다리, 항만, 공항 등 사회적 인프라를 정부가 담당했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주력 인프라로 떠오른 물류는 민간 기업들도 얼마든지
구축할 수 있다.

미국의 물류 회사인 UPS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거듭 강조하지만 뜻있는 지식인들이라면 지금이라도 "정보화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물류 혁명을 이루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것이다"

-월가를 비롯한 서방 전문가들은 한국의 대기업들이 최근 실적 회복에
편승해 구조 조정을 통한 체질 개혁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이 없이 "개혁"이라는 구호만 나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적당한 위기 국면이 유용할 수 있다.

요즘도 미국의 많은 최고 경영자들이 내게 "회사 조직에 긴장을 불어넣기
위해 약간의 위기 국면을 조장하고 싶은데 괜찮은가"하고 물어온다.

나는 그런 방법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제조업체인 크라운 코크&실사의 최고 경영자인 윌리엄 애버리 사장은
이 방법을 적절하게 써먹어 성공을 거둔 바 있다.

크라운 코크&실사는 지난 95년에 프랑스의 경쟁업체를 52억달러에
사들였는데 그 바람에 회사가 큰 빚더미에 올라 앉게 됐다.

애버리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비용 절감을 위해 새로운 업무 프로세스를
개발토록 압박을 가했다.

그의 이런 전략은 그대로 적중했다.

다소 위험 부담이 높은 "도박"이기는 했지만 때로는 이런 선택이 필요할
수도 있다"

< 대담=이학영 뉴욕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