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에너지로 가동되는 초소형 공장들을 지구상공에 뿌려 놓는다. 이 공장
들은 이산화탄소를 잡아 먹고 배설물로 산소와 탄소를 내놓는다"

에릭드렉슬러가 10여년전 피터슨과 함께 쓴 대중 과학서적 "창조의 엔진"
(Engines of Creation)에서 온실효과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방안이다.

당시 드렉슬러는 과학자들로부터 확인되지 않은 기술로 대중을 현혹하는
"몽상가"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그의 몽상이 하나 둘씩 현실화되고 있다.

바로 나노테크놀로지를 통해서다.

나노테크놀로지(Nano Technology)는 현대 최첨단 현미경을 통해야 겨우
그 실체를 관찰할 수있는 원자나 분자를 마음대로 하나씩 조작,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원하는 분자구조의 새로운 물질이나 장치를 만드는 기술이다.

이러한 일은 주사터널링현미경(STM)과 원자힘현미경(AFM) 같은 장치의
개발로 가능해 졌다.

이 현미경들은 원자 및 나노미터 크기의 구조를 밝히는데 사용된다.

나노(Nano)는 10억분의 1을 의미한다.

1나노미터는 원자 3~4개를 붙여놓은 길이에 해당한다.

원자를 10억배 확대하면 겨우 우산 정도의 크기가 된다는 점으로 그
미세세계를 짐작할 수 있다.

이 기술의 개념을 처음 정립한 사람은 드렉슬러였으나 공학적 연구의 범위
안에 끌어들인 사람은 195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이었다.

그는 "원자의 설계도에 따라 원자를 하나씩 쌓아나가면서 조립하면 원하는
모든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가령 공기중에서 탄소 원자를 끄집어내 다이아몬드 구조로 배열하면
천연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논리다.

이처럼 나노테크놀로지가 "21세기의 새로운 연금술"로 떠오르면서 세계적
으로 연구 붐이 일고 있다.

미국 IBM연구소의 아이글러 박사팀은 1990년 니켈표면의 제논(Xe) 원자들을
STM의 탐침으로 하나씩 움직여 "IBM"이라는 로고를 새기는데 성공했다.

원자조작의 가능성을 최초로 입증한 것이다.

이 연구소는 이어 백금 표면에 있는 일산화탄소(CO) 분자들을 다시 배열해
인물화를 그렸다.

이 인물화의 "분자인간"은 모두 28개의 CO 분자들로 그려졌는데 이러한
분자인간 2만명이 서로 손을 맞잡도록 배열해야 사람의 머리카락 굵기와
맞먹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술을 한단계 더 발전시키면 0과 1로 표시되는 디지털
신호를 원자 한 개의 유무 형태로 바꾸는 것이 가능해져 현재 CD정보량의
1백억배를 저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나노기술은 처음에 반도체 집적기술의 물리적 한계가 다가오면서 그것을
극복할 유일한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이제 그 차원을 넘어 나노테크놀로지를 차세대 유망기술
로 선정,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현재 미국 일본 네덜란드 등이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경우 IBM과 같은 기업들이 나노기술에 대한 연구결과를 속속
발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1995년부터 국책 프로젝트의 하나로 대학.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연구가 시작됐다.

대학.연구소 등의 전문가들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주관하는 극미세구조
기술개발사업단과 서울대 나노기억매체연구단의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초에는 연세대 초미세표면과학연구센터가 실리콘(Si) 위에 분자크기
의 실리콘산화물(SiO2)을 움직여 1백나노미터 크기의 "YONSEI"라는 초소형
글씨를 새기는 연구성과를 거두었다.

연구소장인 황정남 교수는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면 현재 대용량 슈퍼컴퓨터
를 데스크톱 컴퓨터 크기로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0년 안에 현미경을 보면서 원자나 분자를 직접
조작하거나 단백질 등을 합성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송대섭 기자 dssong@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