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 서울대 교수 / 생물학과 >

현 정부가 환경 낙제생임은 전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다.

영월댐 건설을 다행히 일단 보류하기는 했으나 일관성 없는 정책 탓에
동강은 이래저래 죽어가고 있다.

세계 제일의 아름다운 갯벌이 엄청나게 비싼 금덩어리인 줄도 모르고
새만금호 사업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르는 우리의 무지에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국립 자연사박물관도 없는 수치를 면하는가 했더니 현 정부가 들어서며
그만 가물치 콧구멍이다.

정부는 또 최근 "지방이양촉진법"에 따른다는 미명 아래 환경관리를 아예
지자체의 손에 떠맡기려 하고 있다.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지나치게 중앙집권적인 우리 행정체계는 분명 개선되어야 하지만 환경행정
만큼은 지자체에 맡겨서는 곤란하다.

그 이유를 따져보자.

첫째, 대부분의 지자체는 가난하다.

환경학자들이 꼽는 가장 중요한 환경 파괴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가난이다.

가난이 우리 강산을 벌거숭이로 만들었다가 경제가 나아지며 산도 다시
푸르러지기 시작했던 일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제가끔 예산을 확보해야 하고, 그러러면 온갖 수익사업을 벌일
수밖에 없다.

당장 저녁을 끓일 땔감이 없어 나무를 베고 있는 가난한 촌부에게
"온실효과"로부터 우리 모두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 나무를 베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둘째, 지자체의 규모로는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과 노하우를
축적하기 어렵다.

환경을 관리하는 일은 물론 주민 스스로의 몫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면한 많은 환경문제들은 갯벌 개발이나 댐 건설을 막으려는
환경단체의 운동 수준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환경학자들의 체계적인 연구와 중앙정부의 강력한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셋째, 지자체들간에 이해가 엇갈리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낙동강 물 관리가 대표적인 예다.

낙동강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물이용 부담금 문제로 경북과 경남의
지자체들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더니 지난달에는 환경부가 주최한
공청회가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의 시위로 무산되기도 했다.

21세기에는 물 때문에 국가들간에 분쟁이 일어날 조짐이다.

강이 여러 나라를 관통하는 지역에서는 머지 않아 물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 나라는 반도국가라 다른 나라들과 물을 나눠 먹을 필요가 없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왜 우리 정부는 애써 지자체들간에 싸움을 붙이려 하는가.

미국의 정책이 모두 합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환경관리에 관한 한 분명히
배울 것이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 93년 집권과 동시에 환경보호국(EPA)을 정부의 다른
부서들로부터 분리시켜 고어 부통령 직속으로 개편했다.

EPA가 제기능을 다하려면 행정부의 다른 부서들이 추구하는 개발 일변도의
정책들과 종종 격돌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여 아예 분리시켜 놓은
것이다.

두 번째 임기 중에는 다시 대통령 직속으로 승격되었으며 로비활동과 여론
조성에 탁월한 능력을 갖춘 여류 행정가 캐럴 브라우너 국장 등의 활약으로
미 대륙의 든든한 환경파수꾼이 되어가고 있다.

깜깜한 밤에 낙하산을 타고 적진에 떨어졌던 이전의 문외한 장관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우리 학계의 대표적인 여류 과학자가 환경부의 수장이 되어
기대가 크다.

그러나 개발 외에는 생각할 줄도 모르고 어쩌면 생각할 수도 없는 다른
장관들과 국무회의에 함께 앉아 늘 홀로 반기를 들어야 할 그 분을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획기적인 대책이 없이는, 혁명적인 관점의 전환이 없이는, 근본적인 구조
조정이 없이는 불을 보듯 뻔한 게 우리 환경이다.

환경부서를 따로 떼어 대통령 직속으로 개편할 것을 건의한다.

그리곤 환경을 파괴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행정업무는 그 부서의 인준을
받도록 해야 한다.

환경세를 따로 거둬 환경부서가 독립적으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 해도 환경세입의 전부가 환경부서에서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쓰인다는 보장만 있으면 국민은 기꺼이 따르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이 환경임을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심지어는 기업도 장차 이른바 "녹색 투자"가 승패의 관건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설 때다.

< jcchoe@snu.ac.kr >

-----------------------------------------------------------------------

<> 필자 약력

=<>서울대 동물학과
<>미국 하버드대 생물학 박사
<>미국 미시간대 조교수
<>저서 : 개미제국의 발견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