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DC에서 뉴저지주로 향하는 길에 애틀랜틱시티에서 하룻밤을
머무른 적이 있다.

라스베이거스에 이은 제2의 카지노 도시다.

호텔방에서 잡지를 뒤적이던 중에 재미난 통계표 하나를 발견했다.

각 카지노 슬롯머신들의 기대치가 비교된 표였다.

최소단위인 25센트를 넣고 당기는 기계는 기대치가 대부분 92% 정도였다.

50센트, 1달러, 5달러로 올라가면서 그 수치는 97% 내외까지 육박했다.

눈에 띄는 것은 한번에 1백달러를 넣는 기계의 경우 1백3%까지 내주는
카지노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1백달러를 열번 베팅하면 평균적으로 여덟번은 기계가 꿀꺽 삼키고
2백달러, 8백30달러를 두번에 걸쳐 돌려 준다는 얘기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1천달러를 투자해 30달러를 버는 셈이다.

왜 유독 이 기계에서만 카지노가 손해를 자처하는 것일까?

언뜻 납득이 가지 않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카지노의 영악함이 엿보인다.

액수가 낮은 게임은 확률적으로 유리하니까 손님이 오래 눌러앉아 놀아만
주면 돈은 절로 들어온다.

비록 확률은 불리하지만 1백달러짜리 게임도 역시 승산은 충분하다.

바로 손님의 "도태확률(probability of ruin)"에 대한 계산 때문이다.

3%의 단 꿀에 홀려 1백달러씩 용감하게 베팅은 하겠지만 대부분 단맛도
보기 전에 자금력의 한계로 깡통을 찬다는 것이다.

점당 1천원짜리 고스톱에서 실력이 좀 떨어지더라도 10만원을 가지고 치는
사람이 단돈 1만원으로 치는 사람을 이길 확률이 높은 것과 같은 이치다.

대부분 주식투자를 하는 이유는 수익을 기대해서다.

이익에만 급급했지 손실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미처 생각해
보지 않는다.

앞면이 나오면 두배를 받고 뒷면이 나오면 베팅한 금액만 잃는 동전 게임은
분명 내게 두배 유리하다.

하지만 매번 내가 가진 돈의 50%씩 베팅을 한다면 동전을 몇천번 던져도
나는 늘 본전 근처다.

1천만원에서 50% 손실을 보고 나면 남은 5백만원에서 1백%를 벌어야만
원금이 회복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르막이 내리막보다 두배는 더 힘들다.

1억원이 2억원이 된다고 하루 여섯끼 먹는 게 아닌 반면, 1억원이 깡통나면
쫄쫄 굶어야 한다.

코스닥에 달라붙어 얼마를 벌었네 하는 사람들도 단순히 무리한 베팅에
마침 운이 따라준 거라면 같은 크기의 불운 한번으로 먹은 것 이상을 토해
내게 돼 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실컷 까먹고 나서야 비로소 "아하"하고 깨닫는다.

단순한 이치를 배우기 위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른다.

이제 새천년에는 우리 투자자들도 그간 낸 수업료 이상으로 거둬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이상의 무모함은 금물이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벼들면 대개 죽는다.

무조건 살고봐야 한다.

살아남아만 있으면 반드시 좋은 날들이 온다.

그날을 기다리며 평소에 손실 1백원을 이익 1천원처럼 여기며 살아야 한다.

수익보다 생존이다.

< 현대증권 투자클리닉센터 원장 / 한경머니 자문위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