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4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한 연구실에서는 인류문명의 대전환을
예고하는 역사적 사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대학의 머클리와 에커트 박사는 훗날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일컬어지는
에니악(ENIAC)을 탄생시켰다.

에니악은 가로 9m, 세로 15m, 높이 3m, 무게 30t의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기억용량은 1백여자에 불과했지만 1초에 5천번의 더하기와 빼기를 할 수
있었다.

곱셈은 1초에 3백60번, 나눗셈은 1백70번까지 가능했다.

에니악은 6천여개에 달하는 스위치로 프로그램을 짰다.

한가지 계산이 끝나면 연구원들이 무거운 케이블을 이리저리 연결하며
프로그램을 바꿔야했다.

복잡한 수식계산을 손이나 머리가 아닌 기계로 자동화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그전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대표적인 성과는 IBM의 지원으로 37년 제작된 전기기계식 계산기다.

"자동순차계산기"라고 불린 이 계산기는 72개의 톱니바퀴와 3천개의 릴레이,
1천마력의 모터를 사용해 23자리의 십진수를 몇초만에 계산할 수 있었다.

나중에 이름을 "마크I"이라고 바꾸었다.

또 39년에는 진공관을 이용한 디지털방식의 컴퓨터가 나온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의 아타나소프 박사는 자신의 조수 베리와 45개의
진공관으로 초기형태의 컴퓨터를 만들어냈다.

이 기계는 그들의 이름을 따서 "아타나소프-베리"컴퓨터라고 불렸다.

그러나 컴퓨터 혁명의 시작은 역시 에니악이었다.

에니악을 만들었던 에커트와 모클리는 대학에서 나와 51년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유니백I"을 만들었다.

최초로 상품화된 컴퓨터 유니백I은 숫자와 영문을 자유롭게 입.출력할 수
있었다.

58년부터 컴퓨터는 트랜지스터의 시대로 접어든다.

이 해 크레이는 트랜지스터로 만든 첫 컴퓨터인, 에니악보다 크기가 1백분의
1로 줄어든 유니백II를 내놓았다.

69년 인텔은 중앙처리장치(CPU) 인텔4004를 선보이고 75년 메사추세츠공과
대학이 처음으로 개인용 컴퓨터(PC)인 "알테어"를 설계.보급했다.

교실만한 크기의 컴퓨터가 드디어 책상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컴퓨터 확산의 획기적인 전기였다.

이후 대규모집적회로(LSI), 초고밀도집적회로(VLSI) 등이 차례로 나오면서
크기는 작아지고 계산능력은 놀랄만큼 뛰어난 컴퓨터가 선보였다.

책상 위에 올려놓는 데스크톱에서부터 들고다닐 수 있는 노트북, 노트북보다
작은 랩톱, 그리고 아예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쓸수 있는 팜톱에 이르기까지
소형화.고성능화 바람을 타고 있다.

최초의 컴퓨터가 나온지 50여년이 흘렀다.

반세기 남짓한 짧은 기간동안 컴퓨터는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원자력발전소 운전제어에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조작까지 이젠 컴퓨터가
없는 사회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됐다.

더욱이 컴퓨터는 80년대 이후 인터넷 네트워크와 결합됨으로써 인류생활의
모든 패러다임을 뒤바꾸고 있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어떤 기술보다 강력한 영향력과 확산속도를 보이면서
인류생활과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기존 시간과 공간개념을 송두리채 파괴,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통해 지구
어느 곳에서든 언제 누구와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이미 우리
눈앞에 열려있는 것이다.

컴퓨터는 앞으로 우리 생활을 더욱 급격하게 바꿔놓을 것이다.

자동차를 스스로 운전하고 말로 작동하는 컴퓨터는 이제 새로울 것조차
없다.

친구가 돼주고 충고까지 해주는 컴퓨터가 멀지않아 등장할 것이다.

컴퓨터의 형태도 바뀔 것이다.

지금처럼 모니터와 키보드가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손목시계나 안경처럼
몸에 부착하는 "입는 컴퓨터"가 곧 실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간의 머리속에 들어가는 칩 형태의 컴퓨터도 연구되고 있다.

생체공학을 이용한 컴퓨터가 나온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 김경근 기자 choic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