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울펜손 < 세계은행 총재 >

언론자유는 사치품이 아니다.

언론의 자유는 평등한 발전의 요체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앗아간다면, 그리고 부패와
불평등에 대한 감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여론을
형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5년전 세계은행에 들어왔을 때 누군가 내게 "부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부패는 다분히 정치적인 문제여서 섣불리 얘기를 꺼냈다가는 상처만 입기
십상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부패를 거론할 수 없다면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도 논할 수 없다.

언론자유보다 더 정치인들을 괴롭힐 수 있는 것은 없다.

또 자유로운 언론보다 사람들을 더 자유롭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부패와 언론자유와 같은 문제는 분명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부패와 언론자유는 사회.경제적인 사안으로서 발전의 핵심요체다.

이 때문에 부패라는 단어는 정치적인 용어가 아닌 사회.경제적 용어다.

부패는 평등한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최대의 적이다.

부패에 대한 이같은 정의는 회원국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실제로 총재 취임후 6개월만에 가진 개발위원회의 회의에서 각국 장관들은
모두 부패에 관해 한마디씩 했다.

그들은 부패야말로 개발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최근 세계은행은 한 나라의 언론자유가 더 많이 보장될수록 부정부패를
단속할 수 있는 힘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 연구는 또한 언론의 자유와 책임, 그리고 1인당 소득, 아동 사망률,
성인 문맹률 등 각종 지표들 사이에 밀접한 상관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전세계 60억 인구중 오직
12억만이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전체 인구중 24억은 언론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고 나머지 24억도
부분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을 뿐이다.

이제 개발과 책임 및 투명성, 그리고 언론의 자유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세계은행은 각국
(개발도상국)의 언론인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전세계의 50개가 넘는 나라의 언론인들을 모아 경제 경영 등 각국의 상황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이 과정의 목적이다.

이 코스에는 에이즈 등 중대한 건강문제를 다루면서 각국의 병폐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하는 강의도 들어있다.

또 언론인으로서 전문적인 방식으로 부정부패를 타파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범죄수사코스과정"도 있다.

물론 언론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세계 언론들은 개발의 문제를 현 시대의 중대 사안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

국민들로 하여금 오늘날엔 세계가 하나로 통합돼 있으며 개발에 관련된
문제들은 지구 전체의 미래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과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리더십이 절실히 요청된다.

우리들 자신과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까지도 모두 지금 세상이 평화와 안정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맥락에서 세계은행은 세계 60개국 6만명의 빈민들을 대상으로 이에 대한
연구를 했다.

이 연구에서 드러난 "빈민의 목소리"는 가난의 복잡성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한다.

우선 빈민층과 부유층을 구별하는 큰 잣대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필요와 요구사항을 정부당국에 올바르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긴다.

또 자신들에게 불평등한 조건들을 바꿀만한 힘도 없다고 자포자기하고 있다.

가난은 단지 돈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가난한 이들은 자신들을 표현하고 싶어한다.

자신들도 직접 지도자를 뽑고 싶어한다.

만약 자신의 목소리를 낼 자유가 없다면-이는 언론의 자유와 직결된 문제다-
평등한 개발을 이룰 권리도 없는 것이다.

매우 간단한 논리다.

모든 나라들은 이러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국민내부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특히 정책당국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국민의 목소리가 환영받는 곳에서만 언론의 자유도 지켜지고 신장될 수
있다.

< 정리=고성연 기자 amazingk@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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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임스 울펜손 세계은행 총재의 세계언론자유위원회 회의 연설문
을 정리한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