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시간여행 (상)] 에너지 변천사..'에너지 정책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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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한국의 에너지 사정은 극도의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대규모 발전소를 가진 북한측의 단전으로 남한의 전력사정은 말할 수 없이
어려웠다.
외화가 모자라 정부가 석유를 배급하던 시절이었다.
정부는 무연탄 생산장려 정책을 펼쳐 59년부터 무연탄의 자급자족을
이뤄냈다.
정부는 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기간(62~71년)에는 에너지산업의 현대화를
추진했다.
발전시설을 늘리고 석탄 증산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66년 겨울 한파로 연탄파동이 일어났다.
채탄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석탄 생산비가 오르자 정부는 산업용 및
가정용 에너지를 석유로 대체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른바 주유종탄 정책이다.
73년 10월 중동전쟁으로 1차 석유 파동이 일어나자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크게 바뀐다.
74년1월 원유값이 전년대비 4배나 올랐다.
정부는 국내 유일의 에너지원인 석탄을 최대한 개발하고 원자력 유연탄
위주로 발전연료를 다원화하기 시작했다.
78년 10월 이란혁명 여파로 2차 석유 쇼크가 발생하자 원유값은 또다시
3배나 급등했다.
정부는 탈석유 정책과 비상시에 대비한 석유비축정책을 추진했다.
총에너지소비의 석유 점유비율은 78년 63.3%에서 82년 57.6%로 줄었다.
70년대 에너지 정책은 공급측면을 강조해 수요 부문의 관리를 소홀히 했다.
83년 이후 에너지 수요관리를 함께 하는 종합에너지정책으로 전환됐다.
80년대 후반이후 국민소득 향상에 따른 에너지소비 패턴의 다변화, 국내
대기오염과 지구온난화라는 환경문제 등 새로운 에너지정책이 대두됐다.
90년대 후반에는 에너지이용 합리화를 위한 시책으로 에너지절약 자발적협약
제도(VA) 등이 시행됐다.
< 정구학 기자 cg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0일자 ).
대규모 발전소를 가진 북한측의 단전으로 남한의 전력사정은 말할 수 없이
어려웠다.
외화가 모자라 정부가 석유를 배급하던 시절이었다.
정부는 무연탄 생산장려 정책을 펼쳐 59년부터 무연탄의 자급자족을
이뤄냈다.
정부는 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기간(62~71년)에는 에너지산업의 현대화를
추진했다.
발전시설을 늘리고 석탄 증산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66년 겨울 한파로 연탄파동이 일어났다.
채탄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석탄 생산비가 오르자 정부는 산업용 및
가정용 에너지를 석유로 대체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른바 주유종탄 정책이다.
73년 10월 중동전쟁으로 1차 석유 파동이 일어나자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크게 바뀐다.
74년1월 원유값이 전년대비 4배나 올랐다.
정부는 국내 유일의 에너지원인 석탄을 최대한 개발하고 원자력 유연탄
위주로 발전연료를 다원화하기 시작했다.
78년 10월 이란혁명 여파로 2차 석유 쇼크가 발생하자 원유값은 또다시
3배나 급등했다.
정부는 탈석유 정책과 비상시에 대비한 석유비축정책을 추진했다.
총에너지소비의 석유 점유비율은 78년 63.3%에서 82년 57.6%로 줄었다.
70년대 에너지 정책은 공급측면을 강조해 수요 부문의 관리를 소홀히 했다.
83년 이후 에너지 수요관리를 함께 하는 종합에너지정책으로 전환됐다.
80년대 후반이후 국민소득 향상에 따른 에너지소비 패턴의 다변화, 국내
대기오염과 지구온난화라는 환경문제 등 새로운 에너지정책이 대두됐다.
90년대 후반에는 에너지이용 합리화를 위한 시책으로 에너지절약 자발적협약
제도(VA) 등이 시행됐다.
< 정구학 기자 cg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