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의 변천사를 이야기할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복부인"이다.

부동산투기의 대명사로 불리던 복부인은 "복덕방"과 "부인"을 조합한 단어로
추정된다.

현대 한국부동산시장의 역사 뒤에는 복부인들의 활약사가 존재한다.

복부인들은 부동산 경기의 부침에 따라 등장과 잠적을 반복했다.

그들이 몰리는 곳에 돈이 있다는 등식이 성립되기도 했다.

복부인이 처음으로 등장한 때는 70년대 중반이다.

서울의 영동 잠실 등 신흥개발지역 주변에 2~3명의 여인들이 몰려다니면서
땅을 사들였다.

대부분 계나 사채놀이를 하다 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환물투자쪽으로 눈길을
돌린 여인들이었다.

사채놀이보다 부동산투자가 안전하다고 생각한 이들은 짧은 기간동안
전매차익을 얻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이후 서울 강남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복부인들의 수는 크게 늘어났다.

투자수법이 더욱 대담해지면서 일부에선 조직화되는 경향마저 보였다.

땅값이 폭등하자 그룹을 결성해 거액의 자금을 모아 부동산에 공동투자하고
이익을 분배했다.

또 전용 복덕방을 통해 가격조작과 전매를 일삼는 등 투기성향이 보다
확연해졌다.

말죽거리로 불렸던 서울 강남 양재동일대 주택지 평당가격이 63년
4백~6백원, 68년 1만원, 70년 3만5천원으로 하루가 다르게 뛴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얻은 시세차익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복부인들의 활동무대는 신축아파트 분양지역이나 서울의 신흥개발지역
이었다.

하지만 일부는 사전에 개발정보를 입수한 지방의 토지나 철거민 아파트
추첨권으로도 영역을 넓혀 나가기도 했다.

복부인들은 서울지역 개발이 마무리되고 부동산 규제가 대폭 강화되면서
시장에서 하나 둘 사라져 갔다.

단속을 하는 정부와 숨바꼭질하며 고속성장의 과실을 따먹었던 이들은
부동산정책 입안에 나름대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유대형 기자 yoodh@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