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시간여행 (상)] 자금조달 역사..은행 뭉칫돈 증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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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면 돈주머니도 바뀐다.
근대 자본주의가 싹을 내밀던 20세기 초엽만 해도 사업이나 장사의 유일한
밑천은 땅이었다.
이른바 토지 본위제의 시대였다.
그러던 것이 경제개발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정부가 보증을 서는
정책자금이 돈주머니였으며 97년까지만 해도 은행에서 돈을 꾸는 것이 최대
밑천이었다.
그런 차입경영이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MF)사태라는 초유의 비극으로
이어지자 이제는 주식발행이 최대의 자금공급원으로 등장했다.
주식본위제의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주식본위제는 과거 1백년간의 기업자금 조달 방법과는 완전히 맥을
달리한다.
담보같은 것은 필요없다.
출중한 아이디어만 있으면,주주에게 돈을 벌어주는 기업이라면 자금을
대겠다는 이는 줄을 서 있다.
아이디어와 이익이 기업자금 조달의 원천인 것이 주식 본위제의 최대
특징이다.
금세기초 "구멍가게"로 출발한 국내 기업이 오늘날 세계 초일류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숱한 곡절을 겪는 가운데 자금조달 방법을
세련화하고 글로벌화한데 따른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최고령 기업인 두산의 창업자인 박승직 회장은 포목장사로 사업의 길을
열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토지가 사업의 유일한
밑천이었다.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은 한마리의 소를 밑천삼아 판을 벌렸다.
20세기초반의 기업자금은 이처럼 원시적이기 짝이 없었다.
정부의 정책자금이 기업의 주된 자금조달 방법이 된 것은 일제 식민체제
로부터 광복된 뒤 근대화 시대로 본격 접어들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자본축적이 미미한 국내경제 환경으로선 어쩔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70년대 이후 경제개발 시대에서는 "은행차입"이 그 바통을 이었다.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사업을 확장하는 시대가 열렸다.
은행돈은 대기업의 주머니에 든 돈이나 다름없었다.
은행으로부터 돈을 많이 끌어쓸수록 유능한 기업인이란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몸집부풀리기 경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무분별한 은행차입을 통한 "부채경영"은 한국경제가 IMF체제로
추락하는 비극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차입경영신화는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보 삼미 진로 기아가 쓰러지더니 4대그룹의 하나였던 대우그룹마저 끝내
종말을 맞고 말았다.
자기자본 경영시대는 그런 값비싼 수험료를 치르고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자금조달 창구를 은행창구에서 주식시장으로 바꾸기만 하면 되는 것을
산넘고 물건너고 참으로 멀리 멀리 돌아온 격이다.
99년들어 11월까지 기업들이 유상증자나 기업공개로 조달한 금액은
32조1천5백억원이나 된다.
전년 동기(11조1천)보다 무려 1백90%나 늘어난 규모다.
해외DR(주식예탁증서)발행 등을 고려할 경우 국내기업이 올 한햇동안
증시에서 조달한 자금규모는 무려 48조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 91년부터 98년까지 총 합계(42조)를 능가하는 규모다.
주식 본위제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순간이다.
이에 따라 4백~5백%에 달하던 대기업의 부채비율은 연말기준으로 2백%로
낮아졌다.
기업의 체질이 바뀌는 순간이다.
벤처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코스닥시장은 한술 더 뜬다.
투자자의 자금력과 기업의 창의력이 맞선을 보는 공간이다.
성공 가능성이 있는 기술력만 갖춘 기업이라면 부도가 나도 돈을 대주는
시장이다.
토지 본위제 시대나 차입경영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근대 기업이 들어서기 시작한 뒤 주식 본위제란 자본주의의 꽃을 피워내는
데는 실로 1백여년이 걸렸다.
동시에 참으로 많은 피와 땀을 필요로 했다.
< 장진모 기자 jang@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0일자 ).
근대 자본주의가 싹을 내밀던 20세기 초엽만 해도 사업이나 장사의 유일한
밑천은 땅이었다.
이른바 토지 본위제의 시대였다.
그러던 것이 경제개발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정부가 보증을 서는
정책자금이 돈주머니였으며 97년까지만 해도 은행에서 돈을 꾸는 것이 최대
밑천이었다.
그런 차입경영이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MF)사태라는 초유의 비극으로
이어지자 이제는 주식발행이 최대의 자금공급원으로 등장했다.
주식본위제의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주식본위제는 과거 1백년간의 기업자금 조달 방법과는 완전히 맥을
달리한다.
담보같은 것은 필요없다.
출중한 아이디어만 있으면,주주에게 돈을 벌어주는 기업이라면 자금을
대겠다는 이는 줄을 서 있다.
아이디어와 이익이 기업자금 조달의 원천인 것이 주식 본위제의 최대
특징이다.
금세기초 "구멍가게"로 출발한 국내 기업이 오늘날 세계 초일류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숱한 곡절을 겪는 가운데 자금조달 방법을
세련화하고 글로벌화한데 따른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최고령 기업인 두산의 창업자인 박승직 회장은 포목장사로 사업의 길을
열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토지가 사업의 유일한
밑천이었다.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은 한마리의 소를 밑천삼아 판을 벌렸다.
20세기초반의 기업자금은 이처럼 원시적이기 짝이 없었다.
정부의 정책자금이 기업의 주된 자금조달 방법이 된 것은 일제 식민체제
로부터 광복된 뒤 근대화 시대로 본격 접어들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자본축적이 미미한 국내경제 환경으로선 어쩔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70년대 이후 경제개발 시대에서는 "은행차입"이 그 바통을 이었다.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사업을 확장하는 시대가 열렸다.
은행돈은 대기업의 주머니에 든 돈이나 다름없었다.
은행으로부터 돈을 많이 끌어쓸수록 유능한 기업인이란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몸집부풀리기 경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무분별한 은행차입을 통한 "부채경영"은 한국경제가 IMF체제로
추락하는 비극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차입경영신화는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보 삼미 진로 기아가 쓰러지더니 4대그룹의 하나였던 대우그룹마저 끝내
종말을 맞고 말았다.
자기자본 경영시대는 그런 값비싼 수험료를 치르고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자금조달 창구를 은행창구에서 주식시장으로 바꾸기만 하면 되는 것을
산넘고 물건너고 참으로 멀리 멀리 돌아온 격이다.
99년들어 11월까지 기업들이 유상증자나 기업공개로 조달한 금액은
32조1천5백억원이나 된다.
전년 동기(11조1천)보다 무려 1백90%나 늘어난 규모다.
해외DR(주식예탁증서)발행 등을 고려할 경우 국내기업이 올 한햇동안
증시에서 조달한 자금규모는 무려 48조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 91년부터 98년까지 총 합계(42조)를 능가하는 규모다.
주식 본위제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순간이다.
이에 따라 4백~5백%에 달하던 대기업의 부채비율은 연말기준으로 2백%로
낮아졌다.
기업의 체질이 바뀌는 순간이다.
벤처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코스닥시장은 한술 더 뜬다.
투자자의 자금력과 기업의 창의력이 맞선을 보는 공간이다.
성공 가능성이 있는 기술력만 갖춘 기업이라면 부도가 나도 돈을 대주는
시장이다.
토지 본위제 시대나 차입경영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근대 기업이 들어서기 시작한 뒤 주식 본위제란 자본주의의 꽃을 피워내는
데는 실로 1백여년이 걸렸다.
동시에 참으로 많은 피와 땀을 필요로 했다.
< 장진모 기자 jang@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