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모 < 중앙대 교수 / 경제학 >

지난 9일 노사정위원회는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문제와 관련해
중재안을 발표했다.

그 핵심내용을 보면 현행법상 전임자는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지급받아서는
안된다는 조항과 또한 사용자는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을 모두 삭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을 모두 포기함으로써 전임자 임금
지급문제를 노사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중재안에는 이밖에도 몇 개 조항을 신설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이들 조항은 다분히 선언적인 것에 불과하거나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별로 의미가 없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용자가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이미
관행화되었으며 이러한 관행이 왜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의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한가지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만일 노사정위원회의 중재안이 그대로
입법화된다면 노조는 이제 사용자가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보다 더욱 더 강력하게 전임자 임금지급을 요구할 것이고
사용자는 이러한 요구를 거절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며 결과적으로 전임자의
수와 지급임금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사용자가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관행은 복수노조를
금지하는 법규정과 함께 우리나라 노사관계 제도에서 가장 부끄러운
부분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지난 97년 3월 우여곡절끝에 3당 합의로 노동관계법을
개정하면서 복수노조 금지조항을 삭제하고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을
신설함으로써 부끄러운 부분을 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규정을 실제로 적용해 보지도
못한 채 삭제하려 하고 있다.

혹자는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다른 나라에서는 전임자의 임금을 노조가 지급하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에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라고 명시된 법규정은 필요없고 따라서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그러나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는 법규정은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예를 보자.

1935년 제정된 와그너법에는 우리와 유사하게 사용자를 규제하는 부당노동
행위가 규정돼 있다.

그런데 이 법은 사용자만을 규제할 뿐 노조를 규제하는 상응 규정이 없어서
불공평하다는 비판이 일자 1947년에는 태프트 하틀리법을 제정하면서 노조측
의 부당행위를 규정해 놓고 있다.

바로 이 노조측의 부당행위중에 "노조는 필요치 않거나 실제로 행하지 않은
일의 대가로 사용자로부터 돈을 받아낼 수 없다"는 요지의 조항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경우에도 노조전임자가 하는 일을 사용자가 필요치 않다고
여기는 한 노조는 사용자에게 전임자 임금지급을 요구할 수 없다는 법규정이
있는 셈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조합원
수에 비해 전임자수가 너무 많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전임자들이 사용자로
부터 임금을 받고 있으며 이러한 관행이야말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관행이며 아무리 관행으로 정착됐다고 해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노동계 행태를 보아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노사자율로는
이 관행이 결코 시정될 수 없다.

법적 강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에 노사정위원회의 중재안을 보면서 정부의 노동정책이 법과 원칙을
도외시한 채 정치논리에만 이끌려 다닌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갖게 된다.

작년에도 정부는 이른바 정리해고제가 입법화된 직후에 바로 정리해고
문제로 현대자동차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났을 때 방금 제정된 법은 제쳐두고
분규를 정치적으로 해결했다.

이번에도 정부는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저버리고 노동계의 압력에 밀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을 모두 포기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가 제대로 지켜지는가의 여부는 앞으로
우리 노사관계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다.

정치적 인기나 득표를 위해서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문제가 절대로
아닌 것이다.

< caueri@chollian.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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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화학공학과, 경제학과
<>미국 라이스대 경제학박사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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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