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반민족문제연구소 설립
<>92년 식민지배 청산문제의 민족사적 이해 세미나
<>95년 민족문제연구소로 명칭 변경
<>96년 보훈정책의 문제 학술행사
<>97년 민족사적 관점에서 본 역대정권의 대일정책 비교 세미나
<>99년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대학교수 1만인 서명 기자회견
<>주소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60-110
<>전화 969-0226
<> http://banmi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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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따금씩 "감춰진 진실"을 밝혀 내려는 가상한 노력들을 접하곤
한다.

큰 영광을 얻는 것도 아니고 은폐 이전으로 역사를 되돌리지도 못하건만
진실 추구자들은 마치 소명처럼 자신의 일에 헌신한다.

친일문제 연구로 잘 알려진 민족문제연구소는 한국의 대표적인 진실추구
집단이다.

사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반민족 행위" 만큼 후세대의 삶을 모순되게 만든
사건도 많지 않다.

"독립운동을 해 3대가 망했다"든가,친일세력들이 해방 뒤에도 그대로
영화스러운 자리에 앉아 굴곡진 역사를 더욱 뒤틀리게 만든 것들은 그 모순의
정도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잘 말해 준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처럼 청산하지 못한 역사를 바로 잡음으로써 민족의
부끄러움과 아픔을 치유하고자하는 "지적NGO"다.

친일문제 연구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구축하고 있던 임종국씨(89년 작고)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김봉우씨(현소장) 등이 주축이 돼 지난 91년 설립했다.

사업내용 역시 반민족행위 조사연구, 일제침략사, 총체적 한일관계문제,
연구결과에 대한 출판 등으로 임씨의 생전 활동과 맥을 같이 한다.

그동안의 결실 또한 상당하다.

무엇보다 친일문제를 대중화시킨 것은 이 연구소의 공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대표적 연구물인 "친일파 99인"(92년), "청산하지 못한 역사"(94년)
등은 10만부 이상이 팔려 연구소측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정부가 "이달의 문화인물"을 선정하기 앞서 "검증(친일 경력)"을 의뢰하는
것도 이 단체의 위상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다.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의 편찬을 숙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누가 친일인사이며 어떤 행적을 보였는 지, 그로 인한 유.무형의 폐해는
어떠했는지를 소상히 밝히는 역작으로서 이 분야 연구의 집대성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지난 8월 대학교수 1만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집필 과정에서 엄청난 방해공작이 들어올 것"이라며
"민족운동 물결이 일어나 보호막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강훈(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장), 김태길(서울대 명예교수), 허웅(한글학회
이사장)씨 등이 고문으로, 또 이돈명 변호사가 명예 이사장으로 있다.

김상근(목사), 김정헌(공주대교수), 송기인(신부), 이두호(만화가),
한수산(작가)씨 등이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밖에 강만길(전 고대교수), 리영희(전 한양대교수), 송건호
(전 한겨레신문고문), 이만열(숙대교수) 등이 지도위원으로 활동중이다.

< 김화주 기자 heewoo@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