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입삼 회고록 '시장경제와 기업가 정신'] (79) '사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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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절단 호주 방문 ]
작은 나라 싱가포르를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호주, 뉴질랜드로 향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지구의 남반구로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11월 하순인데도
초록이 우거진 고장이다.
영어도 영국의 하류층에서 사용하는 "코크니( Cockney )"발음이다.
2차 세계대전때 맥아더 장군 군대가 호주까지 후퇴했다.
갑자기 몰아닥친 미군부대와 함께 부상병도 후송,입원시켰다.
이들을 시중든 호주 간호사들이 미군 부상병에 "두 유 캄 투다이(Do you
come today.)"(오늘 왔느냐)하고 물었다.
그런데 코크니 말은 에이(a)를 아이(i)로 발음하므로 오늘이라는 today가
투다이(to die)로 발음된 것이다.
미국 부상병은 "오늘 죽으러 왔느냐"로 들었다는 우스개 같은 진담이
있었다고 한다.
앞서 싱가포르 리콴유 수상이 영국 통치 시스템에서 배운 것이 법과
질서라고 강조했지만, 호주에서도 이런 사실을 다시 느꼈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시드니는 참 아름답기도 하지만, 질서있게 꾸며진
개척도시다.
높은 언덕이나 다리 위에서 보는 시드니 항만은 해안굴곡과 해심이 있는
양항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큰 상선과 군함이 함께 정박해 있는데도 밖에선 해안굴곡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앞서 방문한 싱가포르는 작은 국토이나 지정학적 요충만으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느꼈다.
그렇다-.
한나라 발전이 국토의 넓이와 또 천연 부존자원이 문제됐던 제국주의시대는
2차 세계대전으로 끝났다.
일본을 보라.
무력없이 호주의 철강과 석탄으로 세계 제일의 철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문제는 수송력이다.
해안을 활용한 항만시설, 대형선단과 조선산업, 이를 연결시키는 효율적
운영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싼 원유와 원광을 공급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전후 일본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우리 한국이라고 못할 것이 무엇이랴"
이런 생각을 갖고 호주에 도착했다.
호주의 첫 방문처는 호주상공회의소(The Australian Chamber of Commerce
and Industry).
영국 런던에 있는 영국경제인연합회(Confederation of British Industry)를
그대로 모방한 조직이다.
우리 전경련, 당시 경제인협회가 상대하기에 최적격 단체였다.
사무총장인 앤더슨씨는 영국 신사의 풍모와 교양을 지닌 분이었다.
우선 방문목적을 간략히 설명하고 앞으로 협력증진을 논의하자고 제의했다.
실례될 정도로 단도직입적이었다.
경제인협회가 이미 영국의 경제인연합회와 62년부터 업무제휴를 하고 있다는
데 엔더슨씨는 적이 놀랬다.
다음은 엔더슨 총장이 관장하고 있는 호일(호일)경제협력위원회를
상기시켰다.
"어떻게 그렇게 소상히 아느냐"고 반문했다.
일본과 경제협력위원회를 운영하면서 호일경협위도 알게 됐다고 했다.
한국이 본격 공업화하면 일본처럼 호주에서 원광 석탄 양모 등을 대량
수입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대목에 이르자, 영국신사의 신중한 풍모를 지닌 엔더슨 총장은 스스로
적극성을 보였다.
"우리도 한국에 대해 사전조사 했습니다. 한국도 공업화에 시동이 걸린
것으로 압니다. 호주산 각종 원료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한호경협위원회 설립을 제안했다.
필자는 이렇게 쉽게 호주가 응해 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67년말 당시만 해도 한호간의 교역은 보잘 것 없었다(1967년 수출
1,09만달러, 수입 9.64만달러, 주수출품-면직물, 수입 80% 양모).
그러나 호주는 한국의 장래성을 내다 본 것이었다.
한호경제협력위원회는 지금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지난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호주 국빈방문때 이 위원회에 속한 한호경제인들
에게 한호협력을 역설했다.
필자가 시작해서 32년간을 이어온 한호협력의 결과였다.
호주를 떠나기전 인상기를 한 두가지 보탠다.
앤더슨 총장과는 수도인 "캔버라(Canberra)"에서 주로 협의했다.
그런데 수도 캔버라는 수도로서 의도적으로 개발, 설계한 도시다.
시드니와 멜버른의 두 거대도시가 서로 "수도는 자기가 차지해야겠다"고
경쟁하는 바람에 그 중간지점인 캔버라를 새로운 수도로 건설하게 됐다.
초목이 우거진 숲속의 도시다.
주거지대는 집집마다 귀빈을 맞이하는 양 빈틈없이 단장돼 있고, 질서도
정연하다.
도시가 너무 조용해서 호주사람들에게 농을 했다.
"캔버라는 전등은 켜져 있으나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 같다"
< 전 전경련 상임부회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3일자 ).
작은 나라 싱가포르를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호주, 뉴질랜드로 향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지구의 남반구로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11월 하순인데도
초록이 우거진 고장이다.
영어도 영국의 하류층에서 사용하는 "코크니( Cockney )"발음이다.
2차 세계대전때 맥아더 장군 군대가 호주까지 후퇴했다.
갑자기 몰아닥친 미군부대와 함께 부상병도 후송,입원시켰다.
이들을 시중든 호주 간호사들이 미군 부상병에 "두 유 캄 투다이(Do you
come today.)"(오늘 왔느냐)하고 물었다.
그런데 코크니 말은 에이(a)를 아이(i)로 발음하므로 오늘이라는 today가
투다이(to die)로 발음된 것이다.
미국 부상병은 "오늘 죽으러 왔느냐"로 들었다는 우스개 같은 진담이
있었다고 한다.
앞서 싱가포르 리콴유 수상이 영국 통치 시스템에서 배운 것이 법과
질서라고 강조했지만, 호주에서도 이런 사실을 다시 느꼈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시드니는 참 아름답기도 하지만, 질서있게 꾸며진
개척도시다.
높은 언덕이나 다리 위에서 보는 시드니 항만은 해안굴곡과 해심이 있는
양항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큰 상선과 군함이 함께 정박해 있는데도 밖에선 해안굴곡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앞서 방문한 싱가포르는 작은 국토이나 지정학적 요충만으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느꼈다.
그렇다-.
한나라 발전이 국토의 넓이와 또 천연 부존자원이 문제됐던 제국주의시대는
2차 세계대전으로 끝났다.
일본을 보라.
무력없이 호주의 철강과 석탄으로 세계 제일의 철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문제는 수송력이다.
해안을 활용한 항만시설, 대형선단과 조선산업, 이를 연결시키는 효율적
운영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싼 원유와 원광을 공급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전후 일본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우리 한국이라고 못할 것이 무엇이랴"
이런 생각을 갖고 호주에 도착했다.
호주의 첫 방문처는 호주상공회의소(The Australian Chamber of Commerce
and Industry).
영국 런던에 있는 영국경제인연합회(Confederation of British Industry)를
그대로 모방한 조직이다.
우리 전경련, 당시 경제인협회가 상대하기에 최적격 단체였다.
사무총장인 앤더슨씨는 영국 신사의 풍모와 교양을 지닌 분이었다.
우선 방문목적을 간략히 설명하고 앞으로 협력증진을 논의하자고 제의했다.
실례될 정도로 단도직입적이었다.
경제인협회가 이미 영국의 경제인연합회와 62년부터 업무제휴를 하고 있다는
데 엔더슨씨는 적이 놀랬다.
다음은 엔더슨 총장이 관장하고 있는 호일(호일)경제협력위원회를
상기시켰다.
"어떻게 그렇게 소상히 아느냐"고 반문했다.
일본과 경제협력위원회를 운영하면서 호일경협위도 알게 됐다고 했다.
한국이 본격 공업화하면 일본처럼 호주에서 원광 석탄 양모 등을 대량
수입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대목에 이르자, 영국신사의 신중한 풍모를 지닌 엔더슨 총장은 스스로
적극성을 보였다.
"우리도 한국에 대해 사전조사 했습니다. 한국도 공업화에 시동이 걸린
것으로 압니다. 호주산 각종 원료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한호경협위원회 설립을 제안했다.
필자는 이렇게 쉽게 호주가 응해 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67년말 당시만 해도 한호간의 교역은 보잘 것 없었다(1967년 수출
1,09만달러, 수입 9.64만달러, 주수출품-면직물, 수입 80% 양모).
그러나 호주는 한국의 장래성을 내다 본 것이었다.
한호경제협력위원회는 지금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지난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호주 국빈방문때 이 위원회에 속한 한호경제인들
에게 한호협력을 역설했다.
필자가 시작해서 32년간을 이어온 한호협력의 결과였다.
호주를 떠나기전 인상기를 한 두가지 보탠다.
앤더슨 총장과는 수도인 "캔버라(Canberra)"에서 주로 협의했다.
그런데 수도 캔버라는 수도로서 의도적으로 개발, 설계한 도시다.
시드니와 멜버른의 두 거대도시가 서로 "수도는 자기가 차지해야겠다"고
경쟁하는 바람에 그 중간지점인 캔버라를 새로운 수도로 건설하게 됐다.
초목이 우거진 숲속의 도시다.
주거지대는 집집마다 귀빈을 맞이하는 양 빈틈없이 단장돼 있고, 질서도
정연하다.
도시가 너무 조용해서 호주사람들에게 농을 했다.
"캔버라는 전등은 켜져 있으나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 같다"
< 전 전경련 상임부회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3일자 ).